[인문·교양] "시 선집은 시대의 표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심심치 않게 시선집들이 출간되고 있다.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는 “과거 잘 된 시들을 가려서 뽑은 선집(選集)은 문단이 활성화돼 시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옥석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또 “옥석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나는 이 시들을 좋게 봤다’는 의미에서 이미 비평의 욕구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시대별로 시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집은 시대의 표정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 교수가 언급한 예전의 선집들은 분량도 요즘 시선집보다 훨씬 방대하고, 포함된 시들이 쓰여진 시기도 보다 긴 시기를 포괄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출간되는 시선집들은 독자들의 독서 편의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소개한 시들에 대한 편집자의 의견을 덧붙여 어렵게만 생각되는 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사평역에서’의 시인 곽재구(49)씨가 최근 펴낸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이가서)는 밥·그리움·사랑 등 4개의 주제로 나눠 20편씩 모두 80편의 시를 모으고 해설을 붙였다.

곽씨는 머릿말에서 “시를 읽는 동안 지상의 언어들이 색색의 솜사탕 하나씩을 들고 어두운 하늘의 계단을 따뜻하게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밝혔다. 시편들이 곧 별이 됐다는 것이다.

시도 아름답지만 곽씨가 붙인 해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곽씨의 해설은 시를 매개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에세이의 형식이기도 하고 시에 대한 진지한 설명이기도 하다.

“나는 보았다/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최영미의 짧은 시 ‘지하철에서1’에 붙인 해설은 시의 몇 배 길이다.

“…내게는 그 마술적인 음료를 사 마실 돈이 없었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허공에 손가락으로 쓰곤 했다…세상의 모든 길 위에서 커피 냄새가 났다…”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이 독한 늙은 부처야!”(부분)

박규리의 ‘노스님의 방석’에 대해서는 “마지막 시구가 화두에 가깝다”고 평했다.

시인 오광수(43)씨가 엮은 『시는 아름답다』(사과나무)도 『별밭…』과 비슷한 체제다. 58편의 시를 모았다. 경희대 국문과 김재홍 교수가 최근 마지막 권을 펴낸 다섯권짜리 ‘현대시 100년 한국 명시 감상’은 본격적인 시 해설서로 과거의 선집(選集)에 가깝다.

『@로 여는 이정환의 아침시조 100선』(혜화당)과 『가려 뽑은 우리 시조』(현암사)는 명 시조들을 모았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