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거스르는 에너지 … 잠실벌 가득 퍼진 ‘친구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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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용필이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콘서트를 28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었다. 5만 여명의 관객이 ‘오빠’를 연호하며 조용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축하했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순(耳順)에 이른 ‘가왕(歌王)’은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소리를 깨친 듯했다. 28일 밤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은 ‘가왕’ 조용필이 빚어내는 소리의 향연으로 들썩였다. 5만 관객이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조용필 콘서트 러브 인 러브’가 막을 올렸다.

이번 콘서트엔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사랑 콘서트’란 부제가 달렸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조용필은 자신의 음악이 지닌 힘을 사회로 환원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달 초 전남 고흥군 소록도 공연으로 한센인들을 위로한 데 이어, 이번 콘서트 역시 수익금을 소아암 어린이를 돕는 데 내놓을 계획이다.

무대는 소아암 어린이를 상징하는 3D 애니매이션으로 시작됐다. 물에 빠진 여자 아이가 빛을 향해 올라가는 내용이었다. 이어 불꽃이 터지면서 조용필이 등장했다. ‘태양의 눈’의 웅장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자 객석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조용필은 “추우시면 노래를 부르고 몸도 흔드시라”며 호응을 이끌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조용필에게서 세월의 흔적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객석을 압도하는 무대 매너와 섬세한 보컬은 외려 세월과 더불어 정점으로 치솟은 듯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바람의 노래’ 등 히트곡을 열창하는 그는 세월을 거슬러 더욱 강렬한 에너지를 터뜨렸다.

특히 ‘Q’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를 땐, 추억에 젖은 중·장년 팬들이 한꺼번에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잠실 주경기장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들이 함께 흔들던 수 만개의 야광봉은 가왕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읽혔다.

이날 콘서트는 ‘무빙 스테이지(Moving stage)’가 가동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조용필이 ‘어둠이 끝나면’을 부를 때 천천히 솟아오른 무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객들 머리 위 6m 지점에서 뜬 채로 무대가 이동하는 가운데 노래가 이어졌다. 투명 아크릴로 제작된 무대는 관객들이 아래에서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무빙 스테이지에 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움직이는 무대 위에서 조용필이 꺼내 든 카드는 ‘단발머리’였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노래가 시작되자 40·50대 중년 여성 관객들이 단발머리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오빠”하는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출발한 무대는 약 20분간 80m를 이동한 다음 천천히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돌아와요 부산항에’ ‘미지의 세계’ 등 그의 멜로디가 계속됐다. 예정된 25곡을 다 부른 다음 가왕은 가만히 무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관객들은 멈추지 않았다. 촘촘히 빛나는 야광봉 사이로 “조용필”“앙코르”등을 외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무대에 오른 조용필은 ‘잊혀진 사랑’ ‘여행을 떠나요’ 등 앙코르곡으로 무대를 또 한번 달아오르게 했다. 마지막 곡인 ‘친구여’를 부를 땐, 무대와 객석이 하나의 합창단처럼 보였다. 조용필 콘서트는 29일 오후 7시 30분에도 계속된다. 28~29일 이틀에 걸쳐 관객 10만 명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 대중음악사는 그렇게 또 하나의 명장면을 추가하게 됐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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