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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비정규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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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국 약 8만5000명의 전문가 집단. 전국 4년제 대학 강의의 55%를 책임지는 이들의 평균 연봉은 400만~500만원이다. 4대 보험도, 연구실도, 휴게실도 없다.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비정규 교수’라고 쓰고 ‘시간강사’라고 읽는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준수한 외모에 지적인 청년 준영(감우성 분)도 시간강사였다. 그래서 현실주의자인 연희(엄정화 분)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다. 의사 남편에게 ‘절대로 안 들킬 자신’을 가지고 준영과 계속 바람을 피울지언정.

최근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 ‘강원도의 힘’은 시간강사의 비애를 보다 구체적으로 그린다. 남자 주인공 상권(백종학 분)은 조니워커 블루 한 병을 챙겨 들고서 자신이 속으로 경멸하는 김 교수의 집으로 찾아간다. 상권이 시간강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교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영화 말미에 상권은 교수가 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가혹하다. 1977년 학원 안정화 조치로 강사의 ‘교원’ 자격이 박탈당한 이래 시간강사의 삶은 무너져갔다. 박봉은 물론이고 ‘종강 무렵 조교에게 전화를 받으면 다음 학기 강의가 있고, 아니면 없다’고 할 정도로 고용마저 불안하다. 2007년 7월 비정규직보호법안 시행령에서도 전문가 집단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빠졌다.(김동애 외 31인,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대한민국 대학 강사들의 생존 현장 이야기』)

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학 임용비리와 불합리한 고용 시스템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간강사가 6명이다. 2008년 2월에는 한모(44·여) 강사가 자신이 박사 학위를 딴 곳인 미국 텍사스 오스틴까지 가서 목숨을 끊었다. 열여섯 살 딸을 두고 엄마가 삶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줬다. 한 강사는 “연구업적·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교수 임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면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지난 25일 광주광역시에서 또 한 명의 시간강사가 목숨을 끊었다. 서모(45) 강사는 “한 수도권 사립대에서 교수 임용 대가로 1억원을 요구받았고 지도교수의 논문을 수십 편 대필했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수취인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8만5000명이 대통령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구희령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