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제는 실물경제 침체에 대비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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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南)유럽발 재정위기에서 비롯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이 내놓은 구제 조치인 ‘유럽 금융안정 메커니즘’의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부도(不渡)를 면할 수 있는 응급처방 효과는 있겠지만 위기의 불씨를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다행히 유럽발 금융불안과 천안함 사태가 겹쳐 요동쳤던 국내 주식·외환시장은 점차 안정세(安定勢)를 찾아가고 있다. 주가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원화가치도 폭락세를 벗어나 회복되는 모습이다. 안팎의 악재(惡材)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이 심리적 공황(恐慌·패닉)으로 치닫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체질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방증일 수 있다. 정부의 기민한 대처도 시장의 조기 안정에 큰 몫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남유럽발 금융불안이 여전하고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의 긴장은 앞으로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잠재된 불안요소가 완전히 제거되기까지 경각심(警覺心)을 풀지 말기 바란다. 시장 참여자들도 섣부른 동요(動搖)를 삼가야 함은 물론이다. 동시에 구조적인 불안요인인 외화자금의 단기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항구적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금부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은 금융 불안이 실물(實物)경제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유로존의 금융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신용 경색(梗塞)과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기 침체는 우리나라의 대유럽 수출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자칫 세계경제의 동반 침체를 부를 수 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진 경로를 똑같이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기다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그 일환으로 대대적인 재정 긴축에 돌입할 경우 실물경기 침체는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침체의 깊은 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더블 딥(경기의 이중침체)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자부해 왔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올 들어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국내외 경제예측 기관들은 다투어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상향조정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낙관론(樂觀論)에 취하기보다는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낙관론의 근거인 세계경제의 회복이란 대(大)전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G20과의 국제 공조를 통해 금융불안 확산과 경기 침체로의 전이(轉移)를 막는 데 전력을 다하기 바란다. 또한 실물경기 악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제운용 방향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경제운용의 초점을 실물경제 침체를 최소화하는 데 맞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