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3월 위기설' 모락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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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도 일본에선 연초부터 '3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가 죽을 쑤는 가운데 경기부양과 구조개혁이라는 상반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다 발이 엉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정권 자체가 흔들린다는 시나리오다.3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경제가 속도를 잃으면 3월 중 위기가 도래한다는 설이 정치권에서 나돌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3월은 기업.은행들의 결산이 집중되고 정부의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직전이므로 금융.주식.외환시장에 모두 긴장감이 높아지는 때다. 또 올 4월 예금자보호 상한제 도입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부실은행에서 예금인출이 부쩍 느는 등 금융불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 대형 은행이 한곳이라도 쓰러지면 거래기업들의 연쇄도산으로 경기는 더 얼어붙게 된다.

여기에다 부실채권 정리를 중심으로 한 고이즈미 정권의 구조개혁이 본격화함에 따라 고용사정도 더 악화할 전망이다.

고이즈미 정권이 경기부양을 위해 추진 중인 엔저 유도정책도 함정이 많다. 자칫하면 일본의 주가와 채권값을 동시에 떨어뜨리는가 하면 아시아통화의 동반추락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정치적으로 연립정권의 파트너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정권 운용에 부담이 되고 있다. 공명당.보수당은 중선거구제 부활과 개각이 늦춰지고 있는 데 대해 고이즈미 총리에게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를 비롯, 에토.가메이(江藤.龜井)파 등 반(反)고이즈미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직 고이즈미의 대안을 찾지 못해 '총리 강판'을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제 발목잡기에 나설지 모르는 형편이다.

정치평론가 구니마사 다케시게(國正武重)는 "총리 취임 1년은 넘길 수 있겠지만 그 뒤에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3월 위기설'로 요약되는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상당한 정치적 시련이 닥칠 것이라는 뜻이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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