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지방 돈 '상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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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방에서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어요. 여윳돈을 은행에 두자니 손해보는 것 같아 서울이나 신도시의 수익형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거죠." 서울과 신도시의 소형 오피스텔과 주상복합아파트에 투자하는 지방 사람들의 한결 같은 소리다.

투자처를 찾는 지방 돈의 '상경(上京)' 행렬이 부쩍 늘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이같은 투자 형태는 거의 없었으나 저금리가 정착된 지난해부터 급증해 적게는 공급 가구의 5%에서 많게는 20%를 지방 사람들이 사가고 있다.

지방에는 투자할 만한 부동산이 많지 않은 데다 아파트나 상가 등 일부 투자상품의 수익률이 수도권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시행자나 시공자가 주인을 대신해 세를 놓고 시설을 관리해주며 수익금까지 송금해주는 토털 투자관리시스템이 확산하고 있는 점도 지방 투자자들의 발걸음을 수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또 다른 요인이다.

최근 경기도 일산 신도시 대화동에서 분양된 다산스카이빌 오피스텔 73실 가운데 지금까지 팔린 50실의 절반이 지방 투자자 몫이 됐다. 전북 전주에 사는 金모(51)씨는 15평형 2개 실을 1억3천만원(부가세 제외)에 샀다. 아무리 안돼도 연간 13%의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金씨는 기대하고 있다.

金씨는 "지방에서는 대학교 근처의 원룸주택을 빼고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고, 특히 이 오피스텔이 투자관리까지 대행한다는 데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벽산건설이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내놓은 광화문시대 오피스텔 동.호수 지정청약자 1백80명 중 지방 투자자가 31명(17%)이나 됐다. 벽산 관계자는 "분양 때 사업지 인근 지역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게 일반적이나 요즘엔 지방 사람들까지 수도권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이 지난달 서울 충정로에서 내놓은 리시온 주상복합아파트 1백98가구 가운데 지방 투자자가 20가구를 챙겼다.

대우가 역시 지난달 분양한 서울 대치동 11~22평형 아이빌 주상복합아파트 1백39가구의 8%가 지방 몫이 됐다.

대학가 원룸형 오피스텔에는 대학생 자녀를 둔 투자자들이 자녀 거주용과 투자를 동시에 노리고 몰려 들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포스코개발이 서울 화양동 건국대 입구에서 분양한 한림포스빌 오피스텔(3백실)은 지방 계약자가 13%로 경기도 투자자(12%)보다 많았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두산위브센티움 오피스텔 2백42실을 분양한 ㈜P&D 임현욱 이사는 "투자용이나 자녀 거주용 등으로 분양받으려는 지방투자자들의 상담이 많았다"고 전했다.

지방 투자자들은 대부분 1억원 이내의 소액.소형 상품에 관심을 가진다. 구매력이 약하기도 하지만 직접 관리할 수 없는 위험성 때문에 여윳돈이 많아도 덩치가 큰 상품은 피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초 서울 목동에서 분양된 동양파라곤 오피스텔의 경우 대부분 중대형인 탓인지 지방 계약자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택업체들은 내년에도 이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투자비 1억원 안팎의 소형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아파트를 많이 내놓을 계획이다.

내외주건 김신조 대표는 "내년에도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지방 여윳돈의 현지 이탈이 계속될 것 같다"며 "주택업체들이 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지방판촉에 적극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황성근.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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