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현장점검] 월드컵-친절하고 당당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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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많은 사람이 도와주고 싶어했고 시설도 괜찮았다. 하지만 공항과 호텔을 제외하곤 말이 통하지 않아 썩 유쾌한 나들이는 되지 못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장외 현장을 점검한 외국인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중앙일보는 교통.숙박.쇼핑.관광.언어소통 등 '성공 월드컵'을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손님맞이 준비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연말 국내 거주를 막 시작한 외국인 젊은이 5명과 동행 취재를 했다.

그결과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외국인들의 언어소통난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6일 낮 12시30분 지하철 시청역. 상암동 경기장을 찾아나선 제르선 카스티요(21.칠레)는 역무원에게 영어로 가는 길을 물었다.

이곳에서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려면 2호선을 타고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야 하지만 역무원은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며 "식스(six.6호선)-"만 반복할 뿐이었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카스티요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처녀 두명에게 접근하자 그들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한시간을 허비한 후 그에게 길을 알려준 사람은 홍콩에서 관광왔다는 20대 여성이었다.

비슷한 시간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독일인 브리타 호프만(21.여)은 종합관광안내센터에서 독일어 통역을 찾았으나 끝내 실패했다.

"안내센터에서 독일어로 '서울역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지만 안내자는 대꾸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영어로 '독일어 안내책자나 서울지도를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영어.일어.중국어로 된 것밖에 없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의사소통 장애는 불편에 그치지 않고 불쾌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외국인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해 무례한 행동을 하기 쉽고 그런 동작이 외국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오후 상암동 경기장행 버스를 탄 중국인 바오샤오둬(鮑曉多.22).

'월드컵'이라는 말을 알아들은 버스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큰 소리로 "내려, 내리라니까"라고 외치며 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대회기간 중엔 가능하면 많은 지점에 외국어 안내소를 설치해 원스톱 안내가 가능하도록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양한 외국어 안내책자가 있으면 불편이 크게 줄 것 같습니다."

말이 안 통해 서울 나들이가 고통스러웠던 외국인들의 조언이다.

홍주연.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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