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닌자의 칼, 7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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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4보 (61~72)]
黑. 송태곤 7단 白.왕시 5단

승부호흡이 유장하던 시절, 바둑은 대세관이 중요했다. 마치 고대의 전투처럼 누가 절호의 요소를 선점해 대세를 리드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지금의 바둑은 목숨을 건 검술 대결과 흡사하다. 한치의 빈틈만 보이면 그대로 급소를 찔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모험을 거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흑▲에 백△로 맞서며 왕시5단은 반격을 노린다. 그래도 이곳은 송태곤7단이 꾹 참아 65까지 타협하고 끝났는데 이 직후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 왕시가 66으로 슬그머니 귀의 빈틈을 노리자 송태곤은 엷음을 선수로 보강하고 싶어 한발 서둘렀다. 그 찰나에 왕시의 칼날이 날아왔다.

69가 발단이다. 이 수는 '참고도1'을 보고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백은 곤란해진다. 그런데 모니터를 지켜보며 바둑을 놓아보던 조훈현9단이 "큰일이다. 맥점이 있다"고 중얼거린다. 잠시 후 바로 그 수, 72가 어김없이 판에 내리꽂혔다. 조9단은 나지막한 비명을 터뜨린다. "당했다."

아주 조금 자세를 흐트러뜨렸을 뿐인데 닌자처럼 고도로 훈련된 왕시의 칼이 정확하게 송태곤의 급소를 친 것이다.

69는 '참고도2' 흑1로 두고 A, B를 엿보며 상대의 움직임을 기다려야 했다. 송태곤은 강하게 움직일 때라고 믿었지만 거기에 착각이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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