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러시아 대사 교체 정치적 고려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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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지난달 러시아 방문 때 '호의적' 태도를 보인 이재춘(李在春)주 러시아 대사 경질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은 30일 "보복인사"라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외교부는 그러나 "李대사와 최상룡(崔相龍)주 일본 대사 교체는 한반도 4강 대사 교체의 일환으로 李총재의 러시아 방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두 대사의 교체는 러시아.일본과의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매듭짓고자 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李대사는 그동안 매끄럽지 못했던 한.러 관계에 비춰 교체가 불가피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李대사는 지난해 이한동(李漢東)총리의 러시아 방문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또 남북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는 일에도 金대통령의 기대에 못미쳤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李대사 후임으로 정태익(鄭泰翼)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임명한 것은 남북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야당 총재에게 호의적으로 대접했다고 인사조치를 하는 것은 외교관에게도 정권에의 충성을 강요하는 치졸한 인사"(南景弼 대변인)라고 비난했다."4강 대사를 교체한다면 미국으로부터 항공안전 2등급 국가, 인신매매 3등국으로 분류돼 국민에게 치욕을 안겨준 양성철(梁性喆)주미대사가 1순위"라는 게 南대변인 주장이다.

권철현(權哲賢)기획위원장도 지난 29일 한승수(韓昇洙)외교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주미대사는 교체하지 않으면서 '4강 대사 교체 일환'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항의했다.

한나라당이 李대사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4강 외교 차원에서 이뤄질 李총재의 미국.일본.중국 방문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해서다. 權위원장은 "李대사 경질을 지켜본 외교관들이 앞으로 야당 총재의 외국 방문에 협조하겠느냐"고 말했다.

崔대사 경질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한.일 꽁치조업 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주일대사관과 민단이 주도한 동포은행 설립이 사실상 물건너가면서 동포사회에서 崔대사의 입지가 크게 좁아진 것도 교체 배경이라고 한다. 후임에 민주당 조세형(趙世衡)전 의원이 내정된 것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다. 지일파(知日派)라기보다는 미국통이기 때문이다. 그의 임명은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일본의 정치권과 원만한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나 "정치적 논공행상에 따른 인사"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상일.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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