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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제갈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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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갈량(諸葛亮-이하 제): 무엇을 장수라 하오?

노숙(魯肅-이하 노): 지휘·진법·공격을 아는 자겠지요.

제: 재(才)만 말씀하셨구려.

노: 가르침을 주시길.

제: 평범한 장수는 군사 수와 용맹만 따집니다. 고명한 장수는 그 너머를 보지요. 천시를 살피고, 지리를 밝혀, 사람을 꿰뚫어요. 자유자재로 놀이(게임)를 즐기는 자라오. 전쟁에는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이 있소이다. 해·달·별, 그리고 바람·구름·물·불·산천을 뜻대로 부리면 백만대군도 깰 수 있지요. 이를 장수의 덕(德)으로 칩니다.”

이 대화가 홍콩 중문대 EMBA 과정의 과제로 올랐다. 제갈량의 관리학과 리더십이 주제다. 토론을 보자.

“갑: 군사 수와 용맹은 기업의 자원과 구성원의 학벌이다. 해·달·별 등은 소프트웨어다.

을: 사람을 꿰뚫는다는 데 주목하자. CEO와 지휘관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 그리고 전장(戰場)에 놓일 인민들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

병: 가장 고명한 부분은 자유자재 게임론이다. 게임을 하려면 규칙에 정통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을 즐기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승(常勝) 추구’ 않기다. 바둑과 같다. 이 한 수의 패배는 다음 한 수의 승리를 위한 포석이다. 제갈량의 가르침은 승리와 패배를 모두 알자는 것이다. 그래야 참된 장수다.

정: ‘보이지 않는 적’이 관심을 끈다. 해와 달처럼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통제 가능한 요소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 아닌가.

지도교수: 좋은 관점들이다. 이제 제갈량 개인을 볼 차례다. 그는 전략적 플래너(planner)다. 먼저 자신을 브랜드화했다. ‘와룡(臥龍)’으로 포장한 부분이다. 승천을 앞둔 잠룡의 이미지다. 둘째, 자신을 세일했다. 유비(劉備)가 세 번 찾았을 때에야 모옥을 나섰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몸값 높이기다. 싸구려로 팔려서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둘째는 재상이 아닌 왕사(王師-왕의 스승)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왕사라야 왕의 간섭 없이 마음대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홍콩 봉황 TV에 출연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여자 제갈량’ 점토 인형을 선물로 받았단다. 최고의 찬사다. 우리 땅의 제갈량은 어디 있을까. 나라가 온통 위기 국면인데. 환율은 폭등이고, 증시는 폭락이다. 인심을 꿰뚫고, 게임을 즐길 줄 아는 리더를, 우리도 갖고 싶다. 

진세근 탐사 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