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마음·남자생각] 우리만의 연말 시상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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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연말이 되면 풍성한 시상식들이 여기저기서 열린다. TV를 통해 한 시상식을 보던 안지는 '2001 우리 만의 시상식'을 기획하고 심사해 보자고 남편인 안정에게 제안했다.

물론 유명 인사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했던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상이다.

상의 이름도 재미있다. '덜렁상''투덜상''감동상''잔소리상''터프상''배꼽상''노벨 평화상''나빠상' 등. 우린 떠오르는 사건과 그 주인공들을 생각해 보며 시상을 시작한다.

먼저 '잔소리상'은 시상식의 기획자이자 심사위원인 안정이 차지했다. 미화해서 말하면 섬세한 성격인 안정이 애정 표현을 빙자해 자잘한 것들에 대해 자주 안지에게 시시콜콜 말했던 게 수상 이유.

다음 '덜렁상'은 역시 주최측의 일원인 안지가 차지했다. 덜렁거리는 성격으로 가정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을 평가(?)받았다.

'감동상'은 우리 부부의 신혼여행지였던 프랑스의 빵집 아줌마에게 돌아갔다. 매장 앞 유리문에 붙은 전시회 포스터를 탐내며 이런 거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방긋 웃으며 포스터를 손수 뜯어 주던 그 예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나빠상'은 안지가 입원했던 병원의 수간호사가 수상했다. 말로 다 때우려들고, 의사와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천양지차며, 환자보다 자기 본위로 일한 게 수상 이유다.

'터프상'의 주인공은 안지의 형부 S씨. 손에 피부병이 생겨 술을 삼가는 중이던 안정을 향해 "마시고 손목 끊어"라는 거친 발언으로 우리의 감탄을 샀다.

'노벨 평화상'은 안정의 어머니이자 안지의 시어머니인 C씨.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의 극단적 대치상태를 무난하게 풀어주고 돌파하게 해준 공로로 수상했다.

이밖에 '배꼽상'은 안정의 선배 A씨. 결혼 피로연에서 우리로 하여금 세 시간 가까이 눈물 흘리며 배꼽을 쥐다가 떼굴떼굴 뒹굴게 만들어준 공로로 영예를 차지했다.

'투덜상'에는 안지의 친구 C씨가 선정됐다. 남자 친구 없는 노처녀의 히스테리로 매사에 안지에게 투덜거린 점이 수상 사유.

한 해를 보내며 TV 앞에서 누가 상을 타나 보고만 있지 말고, 주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을 제정해 시상해 보자. 그 속에서 두 사람의 한 해가 소복하게 정리될 테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좋은 상을 탄 사람에게는 작은 선물을 하나 마련해주는 건 어떨지.

자유기고가

▶안정(34세. 프리랜서 글쟁이. 안정은 필명. 안지의 남편)

▶안지(29세. 시나리오 작가 준비생. 안지는 필명. 안정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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