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산업' 정부대책 실효성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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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너무 추상적이다. 며칠 후면 내년인데 구체화된 것이 없다. 쌀 재고가 많다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없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화 정책위원장은 정부의 쌀산업 대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원론적인 수준의 목표를 나열한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 생산조정 시동=정부는 국내 수요보다 많은 쌀 생산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내년에 도입하겠다는 전작보상제는 논에 콩나물 콩을 심을 경우 3백평당 벼농사 소득(70만2천원)과의 차액(28만8천~31만3천원)을 농수산물 가격안정기금으로 지원한다. 옥수수와 수단그라스 등 사료작물을 재배하면 차액 36만원을 축산발전기금으로 보전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농림부가 끌어모은 1백93억원으론 전작보상이 5천㏊만 가능하다. 천수답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계농지가 우선 대상인데 올해 벼 재배면적(1백8만3천㏊)의 0.46%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작보상제를 통한 쌀의 감산효과는 작을 것으로 보인다.

놀리는(休耕)논에 대해 벼를 심도록 유도해온 정책도 중단한다. 정부는 쌀 생산이 급감한 1996년부터 이 정책을 펴 올해 5만㏊의 휴경논에 벼를 심도록 했다.

이같은 생산조정이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잘못하면 논에 심는 밭작물이 급증해 채소류가 과잉생산돼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이정환 부원장은 "벼 재배면적을 줄이더라도 밭작물 가격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농민들,공공 비축제 반대=현행 수매제는 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따라 해마다 7백50억원씩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올해 정부 수매량(5백75만섬)은 전체 생산량의 15%에 불과,수매제를 통한 쌀 수급조정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시세대로 쌀을 사들여 쌓아두었다가 시가로 파는 공공비축제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를 수매제 폐지의 신호탄으로 보고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시가로 사들이면 현행 수매가보다 쌀값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농림부가 비축물량을 세계식량기구의 권장 기준인 5백50만~6백만섬으로 생각하는 데 비해 농민단체들은 북한의 상황까지 고려해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공비축제를 도입하더라도 수매제와 함께 어정쩡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

◇ 고품질 대책 미흡=농림부는 내년 수매부터 벼의 품질등급을 현재의 3개등급(1.2.등급외)에 특등급을 추가할 계획이다. 전체 생산량의 25% 정도를 특등급으로 하고 현행 1등급보다 40㎏들이 가마당 2천~3천원을 더 쳐주되 2등급과 등외품은 현 수준보다 낮추겠다는 생각이다. 올 추곡 수매에서 1등급이 96% 넘게 나오는 등 변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5~6단계로 나누려던 당초 계획보다 후퇴했다. 품질을 세분화할수록 농민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태국은 6등급, 중국은 5등급으로 벼의 품질을 구분하고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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