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격동의 시절 검사 27년 (1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9. 검사장에 항명

나는 김성재(金聖在)검사장에게 영등포 수도사업소의 교묘한 불법행위를 설명한 뒤 사건 규모나 수법에 비춰볼 때 관련자들을 구속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金검사장은 사건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내 설명은 제대로 듣지 않은 채 "대가성에 대해 수사를 했나"고 물었다.

"일단 구속한 뒤 수사하기로 했고 대가성이나 뇌물 수수 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시간이 문제이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내 말을 들은 金검사장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수사도 안된 상태에서 서기관이나 되는 고급 공무원을 구속하려 하느냐"고 핀잔을 줬다."서기관이 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는가"라는 핀잔도 보태졌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가 "일간 신문을 추가로 찍어가며 부정한 입찰 서류를 만들어 특정 업자에게 공사를 낙찰시키려 했던 행위만으로도 구속 수사를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고 관련자들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없애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金검사장은 다시 굳은 얼굴로 "이나카 사무라이구먼"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를 배운 세대는 아니지만 '이나카 사무라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이나카 사무라이'는 일본 무사 가운데 변방(시골)의 무사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검사장의 뜻도 모른 채 무조건 구속 수사를 주장하는 나를 세련되지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시골 무사에 비유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박종훈 1차장검사가 강우영 지청장에게 "姜형, 뭐 이런 검사가 다 있소. 지도를 잘 해야 하겠소"라며 핀잔을 주며 金검사장을 지원하고 나섰다. 그러나 姜지청장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계셨다. 나이로 보나 검사 경력으로보나 朴차장이 姜지청장에게 그렇게 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金검사장으로서는 새까맣게 어린 평검사가 검사장이 내린 결정에 불만이 있다며 검사장실을 찾아와 벅벅 우겨대는 것도 못마땅한데다가 이런 검사를 말리기는커녕 검사장실까지 데리고 온 姜지청장도 못마땅한 눈치였다.

서정각(徐廷覺)2차장검사는 그러나 30여분간 계속된 논쟁에도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경성제국대학 출신에 불의와의 타협을 모르는 것으로 유명한 그분의 성격상 무례한 내 행동에 한 마디 하실만도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金검사장을 설득해 제대로 수사를 해보려던 姜지청장과 나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핀잔만 듣고 나왔다.

법원 신관(지금의 서울시청 별관) 뒤쪽 계단을 통해 구 대법원 분수대 앞을 지나 배재학교 앞길로 姜지청장과 나는 맥이 빠진 채 축 처진 어깨로 청사로 돌아갔다.

말은 없었지만 姜지청장은 서울지검장에게 사정없이 깨진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후배 교육 잘 시키라는 1차장의 공격에 기분이 매우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金검사, 미안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한참 정적이 흘렀다.

한동안 걷던 내가 말을 꺼냈다.

"지청장님, 참 속도 넓으십니다. 왜 1차장 말씀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

姜지청장은 가을 하늘만 응시하면서 허허 웃기만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결과를 궁금해 하며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부장검사 두분과 검사들은 검사장실에서 오고간 대화내용을 전해듣고는 낙담천만의 표정들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기자들이 또 몰려왔다. 기자들은 그 사건의 배경에 대해 자신들이 나름대로 파악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金모 서울시장과 영등포 출신 국회의원 張모씨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떤 이야기도 듣기 싫었다.일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퇴근 후 내 옆방에 있는 고등고시 동기생 유길선 검사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술자리에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경회 <전 한국 형사정책 연구원장>

정리=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