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선' 심증은 가는데 확증은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의 일본 영해 침범 사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러 정황으로 봐 북한 공작선인 것으로 심증은 굳혔다. 그러나 확증이 없기 때문에 공식 발표를 하지 못한 채 사실 확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침몰된 괴선박에서 떠오르는 물체나 유해를 발견하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적.승무원 국적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다.

발견된 유해 세명 가운데 한명이 입고 있던 구명복에서 한글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일본 경찰 관계자는 "15명 가운데 한명을 놓고 북한 공작선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규명해 해당 국가에 항의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최종 확인의 열쇠는 침몰된 선체 인양에 달려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고이즈미도 25일 "가능한 한 인양하겠다"고 말했다.

괴선박은 수심 1백m 정도에서 침몰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인양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잠수정으로 침몰 위치를 확인한 후 선체의 파손상태.해저상황.조류 등을 조사한 후 선체에 와이어를 묶어 끌어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침몰지역은 겨울부터 봄까지 바람이 매우 거세 본격 작업은 내년 6월에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다른 문제는 침몰 지역이 각국 해군의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공해(公海)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데 있다.

일본 내에서는 침몰지역이 공해란 점을 들어 중국 허락없이 인양작업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도쿄(東京)신문은 "중국의 승낙없이 강행할 경우 중.일관계가 악화될 것이 뻔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전망했다.

중국은 이미 일본이 자국 EEZ에서 괴선박에 선체사격을 한 데 대해 "유의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밝힌 상태다.

주일 정보소식통은 또 "괴선박이 북한 공작선일 경우 중국이 북한의 부탁을 받거나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선박 인양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허락해도 중국.일본 등의 해군이 경비를 위해 출동하는 등 주변 해역에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