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기업 최대 불만은 노사문제·행정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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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의 투자환경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규제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무원들과 경직된 노사관계는 외국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골칫거리라는 지적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과 우수한 인력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만한 유인으로 꼽혔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가 최근 주한(駐韓) 외국기업 77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드러난 '2001년 한국의 투자환경 성적표'다.

◇ 투자환경 전보다 개선,중국에는 뒤져=올 한 해 동안 한국의 투자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개선됐다(48.1%)는 응답이 악화됐다(20.8%)는 응답보다 두배 이상 나왔다.

한국에서 사업하면서 외국기업이라 차별대우를 경험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3분의 1(33.3%)에 달했다. 투자가들에게 본격적으로 문호를 열기 시작했던 3~4년 전의 각종 조사에선 대부분 기업이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던 데 비하면 큰 진전이다.

조사대상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게 된 요인(복수응답)으로 높은 경제성장률(27.0%)을 가장 많이 꼽았다. 풍부한 내수시장(19.7%),우수한 인력(19.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투자 대상국으로서의 매력을 따지는 질문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격차가 한참 벌어지는 2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올 들어 세계 각국이 전년보다 평균 32%씩 외국인 투자가 격감하는 와중에서도 중국은 유일하게 투자유치 규모가 30%나 늘어난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조사대상 기업들이 여타 경쟁국인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한국을 우위에 올린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 내년엔 올해보다 투자 확대=내년 중 투자를 확대하겠다(55.8%)는 기업이 현 상태에서 동결하거나 축소하겠다(44.2%)는 기업보다 훨씬 많았다.

국내기업들이 올 한 해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데 비해 외국기업들은 매출액 증가율이 세자릿수까지 치솟고 시장 점유율도 대폭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우리나라 경제가 올해보다 나아지리라고 보는 외국기업이 많은 것도 투자확대 분위기에 일조했다.

조사대상 외국기업의 과반수(53.2%)는 내년에 우리나라 경제가 올해보다 높은 3%대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도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요인을 꼽으라는 질문(복수응답)에 대해 외국기업들은 구조조정 효과 가시화(34.9%), 국가 신용등급 상향조정 후 외자유입 증가(21.7%), 세계 반도체 경기 호전(17.0%) 등을 꼽았다. 반면 세계경제 침체(45.3%), 기업.금융부문의 잠재부실(25.5%) 등은 악영향을 끼칠 요인으로 전망됐다

◇ 공무원과 노조엔 불만=외국기업들은 한국에서 사업하면서 겪는 어려움(중복응답)으로 각종 행정규제와 노사문제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법과 제도를 많이 뜯어고쳤지만 정작 현장에서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공무원들에게서 뇌물 및 리베이트 요구를 받은 외국기업이 전체의 3분의 1이나 됐다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그 방증이다.

외국기업의 고충처리를 전담하는 외국인투자옴부즈맨사무소 관계자는 "외국기업들은 엄격한 회계제도 때문에 영수증 처리를 하기 힘든 돈은 쓰기가 어렵게 돼 있다"면서 "이 때문에 인허가 과정에서 급행료나 인사치레를 요구받으면 몹시 곤혹스러워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자체적으로 외국기업 규제실태 조사를 벌인 김영학 산업자원부 투자정책과장은 "실질적인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및 단체장들에 대한 불만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면서 "내년부터 지자체마다 관련평가를 실시하는 한편 일선 공무원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전반적인 투자환경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노사환경은 별로 좋아진 게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 올 한 해 동안 노사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나아졌다는 응답은 24개(31.5%)기업에 그쳤다. 반수를 넘는 43개(56.6%) 기업이 종전과 같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오히려 악화됐다는 의견을 냈다. 또 노사문제가 골치 아파서 한국 내 사업을 정리하고 떠나려 했다는 기업이 다섯개 중 한개꼴에 달했다.

실제로 1999년 아홉건에 불과했던 외국기업의 노사분규는 지난해 31건으로 껑충 뛰었고 올해도 11월까지 20건이 신고된 상태다.

신예리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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