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엔화 동반약세… 수출전선 그나마 현상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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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원화가치 하락세는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엔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크지 않다. 엔저(低)로 인한 우리 수출 위축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원화가치가 떨어지면(환율은 오름) 수출상품의 가격이 싸져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 흑자폭이 커진다.

그러나 수입품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원재료 등의 수입물가가 올라 물가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원화값이 더 떨어질 경우 국내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들이 환차손을 우려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엔화가치가 얼마까지 떨어지느냐다. 일본 정부는 노골적으로 엔저를 유도하고 있다. 몇년째 제로금리인 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엔저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달 초 일본 재무부의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엔저는 당연한 움직임'이라고 말했고,19일엔 일본은행까지 추가 금융완화를 할 것이라며 엔저를 부추겼다.

엔저로 수출을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계산이다.국제통화기금(IMF)도 엔저에 동조하고 있다. 엔화가 달러당 1백40엔에 이르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엔화 약세가 오래 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세계가 동반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 일본만 엔화 약세를 통해 수출을 늘려 경기회복을 노리는 것은 '이웃 국가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란 비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조문기 외환운영팀장은 "미국.일본간 무역 불균형이 여전하므로 엔화 약세는 달러당 1백30엔선에서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원화가치도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떨어졌으므로 곧 조정국면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외환 수급면에서 달러 공급요인이 더 많다고 본다.

12월엔 밀어내기 수출 등으로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연말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지난 19일 현재 1백25억달러인 거주자 외화예금도 외환당국을 느긋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 기업 등이 갖고 있는 이들 외화예금은 환율이 더 오르면 언제든지 원화로 교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경제동향실장은 "엔화와 달리 원화는 경상수지 흑자 등 강세요인이 더 많다"며 "수출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엔화 동조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외환시장이 알아서 움직이지만 원화가 엔화 동조에서 벗어나 '나홀로 강세'를 띨 경우 외환당국이 외면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엔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은행 정정호 경제통계국장은 "우리 경제의 외환위기 극복이 환율효과(원화가치 하락)에 의존한 것 아니냐는 외신의 지적이 있다"며 "환율차만으로 수출경쟁력을 얘기하는 시대가 빨리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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