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통사고 손실액 9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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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통사고로 지난 한해 1만2백36명이 숨지고 42만6천9백84명이 다쳤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총 8조9천억원이라는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자료는 이 해묵은 과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접근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임을 시사한다.

1980년대 이후 정부는 여러 차례 장단기 대책을 내놓고 교통사고 줄이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래도 여전히 1분12초마다 한명꼴로 사상자를 내니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보다 우리 고속도로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현재 정부조직상 교통 관련 업무는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다. 건설교통부.행정자치부.경찰.철도청, 각급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사업을 벌이고 총괄조정이나 평가.문책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으니 돈을 많이 써도 성과는 작을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는 교통시설.차량.운전자의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개선될 때 줄어들 수 있다. 그중에도 도로 등 교통시설의 중요성이 크다.

도로는 원래 '평균운전자가 보통수준의 주의력.운전실력으로 운전할 경우 안전'하도록 설계.건설.운영돼야 하지만 우리 실정은 그렇지 못한 곳이 많다. 연구에 따르면 치명적인 교통사고는 단속의 손길이 덜 미치는 한적한 지방도로,한밤 도시 내 도로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그러한 '사고 잦은 곳'이 7천여곳이나 된다.

이런 도로시설의 관리체계가 문제다. 경찰.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책임을 떠밀 수 있게 돼 있다. 도로 일반을 관리하는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지만 안전시설의 설치.운영은 경찰이 한다. 그 예산은 지자체가 배정한다.

지자체는 통상 요구예산의 절반 정도를 배정하고 경찰은 안 주면 그만, 사고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이런 체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교통시설 설치.운영 권한을 지자체 등 도로관리청에 이관,일원화해야 한다. 그래야 교통사고 한건에도 몸 다는 책임부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치단체와 단체장 평가에 중요 항목으로 교통사고 줄이기를 넣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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