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자형 경기회복 기대감 시들…'조정 터널' 들어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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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식시장의 조정 폭이 예상외로 가파르다. 며칠 숨을 고르면 연말 증시가 다시 후끈 달아오를 것이란 전망은 쑥 들어갔다.

종합주가지수는 최근 3일간(거래일 기준) 33포인트 떨어지며 6백5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조정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연말 고배당 종목 등에 한정한 보수적인 매매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 고개숙인 V자형 경기회복 기대감=9월말 이후 대세상승 논리를 내세우며 주가가 줄기차게 올랐던 것은 무엇보다 머지않아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경기회복 시점은 내년 1~2분기 중이 유력하며, 게다가 V자형의 가파른 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공감대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기대감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 회복론은 여전히 힘을 얻고 있지만, 그 형태는 V자형보다는 U자형으로 회복 속도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다시 늘고 있다.

지난주 나온 미국의 11월 소매판매액은 전달보다 3.7% 줄어 경기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미국의 11월 설비가동률은 74.7%로 전달보다 0.3%포인트 떨어졌다.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국내 경기지표도 내용을 뜯어보면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양증권 박재훈 연구위원은 "백화점 매출 등 국내 내수경기 지표들이 최근 좋아지고 있지만, 이는 소득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빚을 내 씀씀이를 늘린 탓(가계대출 1년새 40% 증가)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신경제연구소 강성모 분석실팀장은 "경기회복은 여전히 기다려 봐야 할 변수인데 비해 주가는 너무 성급하게 멀리 내달렸다"며 "세계 증시는 새로운 경기회복 징후가 나올 때까진 시간을 끌며 눈높이를 조정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 기업 실적개선도 기대 이하=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질 조짐은 아직 없다. 미국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5백대 미 기업의 4분기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루슨트 테크놀로지.오라클.시에나 등 지난주 나온 개별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예상치를 밑돈 경우가 많았다. 제약회사인 머크와 카드회사인 아멕스 등 전통 기업들도 실적악화를 스스로 경고했다.

이번주에도 인텔과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제너럴 일렉트릭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실적 전망치를 공개하는데, 시장 기대치에 못미치지 않을까 투자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신용규 연구위원은 "미국의 기관투자가들은 기업 실적에 자신감이 없으면 장기 주식 편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미 기업들의 실적 공개치가 계속 예상보다 나쁘게 나오면 외국인 투자가들은 당분간 전 세계적으로 매도우위의 매매패턴을 보일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 개인들이 넘겨받은 장세 주도권=외국인들이 연 이틀 1천억원 이상의 순매도에 나서면서 장세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개인투자자들 손으로 넘어오고 있다.

장세가 조정을 받고 있지만, 증시에 포진한 개인들의 고객예탁금은 여전히 10조원을 넘는다.

키움닷컴증권 안동원 이사는 "외국인들은 9월 말 이후 상승장세에서 가장 큰 재미를 본 데다 연말 결산까지 앞두고 있어 차익실현 욕구를 강하게 느낄 것"이라며 "당분간 외국인들이 많이 갖고 있는 대형 우량주는 피하고, 개인들이 좋아하는 중소형 개별주나 연말 고배당 종목을 중심으로 매매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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