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비리 직격탄… 조총련 벼랑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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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총련은 무너지는가.

일본 경찰의 조총련 산하단체인 '재일본 조선 신용조합 협회(朝信協)'에 대한 수사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조총련이 1955년 결성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조총련은 '명백한 정치탄압'이라며 반발하면서도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북.일관계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의 재일동포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조총련 수사의 전말과 파장을 짚어본다.

◇ 수사 의도.성격=올들어 조총련계 부실조합들에 대한 저인망식 수사를 벌여온 일본 경찰은 지난달 29일 조총련 창설 46년 만에 처음으로 조총련 중앙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정경생(鄭京生)전 조긴도쿄(朝銀東京)신용조합 이사장과 강영관(康永官)전 재정국장 등 핵심인물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17일엔 전 조긴아이치(朝銀愛知)신용조합의 김영호(金榮浩) 전 이사장을 체포, 수사망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과거 여러차례 지적돼 온 조총련의 금융비리 문제를 못본 척했던 경찰이 이번에는 1백명의 특별수사팀까지 구성,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찰은 이 사건을 정치문제가 아닌 경제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수사도 경제수사 전문인 경시청 형사부 수사2과가 맡고 있다.

주일 정보 소식통들은 조총련계 신용조합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내년 3월로 예정된 예금보호 동결조치를 앞두고 국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대응책으로 보고 있다. 일본 국민은 98년 5월 3천1백억엔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조긴긴키가 1년도 안돼 1차 파산한 데 분노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긴도쿄 등 5개 조총련계 신용조합이 설립하는 '하나신용조합'에 일본 정부가 내년 3월까지 공적자금 5천억엔을 투입한다는 방침에 특히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도쿄(東京)외교가에는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일본에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할 것을 요청, 수사가 급진전했다는 설도 나돌고 있다.

◇ 조총련 붕괴하나=구속된 이정호 조신협 회장이 금융부정 내용을 얼마나털어놓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그의 진술 여부에 따라 조총련의 재정을 총괄해 온 허종만(許宗萬)책임부의장까지 책임을 추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의 공안소식통들은 李회장이 다 털어놓을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도 북한과의 관계를 감안해 극단까지는 밀어붙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조총련에 이어 북한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고,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자민당 간사장 등 일부 일본 정치인들도 북.일관계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총련은 이번 사건으로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게 될 전망이다. 서만술(徐萬述)의장의 라이벌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워 차기 의장으로 여겨져 온 許부의장의 입지가 우선 매우 불안해졌다.

또 조총련계 금융기관들의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조총련계 기업들 또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돼 조총련 구성원의 이탈이 늘어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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