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마르크화 아쉬운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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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요일인 16일 자정(현지시간). 독일의 경제 수도에서 유럽의 금융 수도로 떠오른 프랑크푸르트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화 동전이 자정을 기해 시판에 들어간 것이다.

10유로 23센트 어치의 각종 유로화 동전이 든 '스타터 키츠(Starter Kits)'가 일반 시민들에게 20마르크에 팔렸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은행 창구 앞에 장사진을 친 수많은 시민들은 새 동전 꾸러미를 받아들고 환성을 질렀다. 독일은 연말까지 5천3백만 세트를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유럽 12개국에서 실물통화로 통용되는 유로화는 이렇게 우선 동전부터 일반 시민에게 선을 보였다. 지난 14일 프랑스를 시작으로, 독일을 마지막으로 단일통화권 전 지역에서 유로화 동전이 순조롭게 데뷔했다.

유로화의 등장은 독일에서 마르크화의 퇴진을 의미한다. 독일인들의 반응이 환영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기쁨과 서운함이 뒤섞인 착잡한 마음인 것 같다.

며칠 전부터 독일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광고는 '마르크와의 작별'에 대한 독일인들의 심경을 잘 드러내준다. 슈파카세라는 금융기관의 유로 도입에 관한 광고다. 광고는 마르크화가 그동안 독일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던가를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마르크화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경제부흥의 상징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마르크화를 손에 쥔 지 10여년 만에 다시 이별해야 하는 구 동독인들은 특히 섭섭한 마음이다. 마르크화의 덕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고,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얼마 전 쾰른의 라인골트연구소는 유로 도입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응을 조사했다. 드레스덴의 한 시민은 두시간 내내 울기만 하면서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또 다른 시민은 "직장을 잃고 마누라가 도망간다 해도 참을 수 있지만 마르크가 사라진다니 가슴이 찢어진다"고 답했다.

이제 2주일 후면 마르크화는 다른 11개국 화폐와 함께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로화는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래도 독일인들은 마르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우프 비더젠, 데 마르크(잘 가거라, 마르크화여)."

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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