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한국인들의 인간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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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1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돌이켜 보니, 한국에서 생활한 지 벌써 6년이나 됐다. 그동안 정말 한국에서의 삶은 역동적이며 활기찬 덕분이어선지 무척이나 빨리 지난 것 같다.

*** 자신들에겐 지나치게 냉정

내가 이제까지 만난 한국인들 중에서 자신들이나 한국인 전체 혹은 대한민국에 대해 의외로 자부심이 약하고 평가에 대해 인색한 사람들이 많다.

흔히들 말하기를, '어느 선진국에서는 이런데, 우리는 못하다' 식의 주변 국가 혹은 선진국의 장점이나 배워야 할 점을 많이 부각시킨다. 언론도 한국인의 우수함보다 다른 나라의 장점을 보여주거나 한국을 비판하는 것을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외국인이 한국과 한국인을 칭찬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그저 외국인들이 으레 형식적으로 또는 예의상 하는 말이려니 하고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데도 말이다. 그러나 외국인이 신랄하게 한국이나 한국민을 비판하면, 사정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즉각 보도되기 일쑤며, 이건 어느 나라의 사례를 본받아야 하고, 또 저건 어느 나라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타국의 우수함이나 장점, 세계적인 경쟁력 같은 것을 보고 배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반성해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도 좋지만 어쩐지 내게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에 대해 지나치게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 역시 비슷하다. 선진국들과 비교해 이것이 불편하고 한국근로자들은 이 점이 부족하며 원활한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선 이런 저런 것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많이 비판한다. 물론 근거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에서 수백년에 걸쳐서 이뤄진 '산업화'가 한국에서는 5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이룩한 것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간과한 편견 어린 평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난해부터 '올해를 빛낸 한국인'을 뽑는 심사위원단의 한 사람으로서 심사를 맡아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참으로 한국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사회를 빛내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분들이나 기관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분들 중에는 지구촌 어디에선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많이 활동한 것이 한국의 발전과 번영을 가져온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든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정말 많은 한국인들이 자기의 삶조차 희생하면서 각계각층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의 삶은 본인과 가족의 행복은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희생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희생한 119구조대나, 조국의 암 의학 발전을 위해 그동안 해외에서 쌓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귀국을 결정한 이진수 박사 같은 분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남을 위해 자기의 삶을 희생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 민족의 역량 제대로 평가를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정이 많으며 사랑이 많고 아름다운 민족인지 스스로에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것은 헛된 자부심이나 교만이 아니다. 민족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는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올 한해를 정리하며,오늘날의 한국이 있을 수 있도록, 또한 한국의 저력이 세계 속에 드높여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의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분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미쉘 깡뻬아뉘(알리앙츠 제일생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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