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부총리 성균관대에 장서 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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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 인물의 숨은 개인사를 더듬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수 있다.

성균관대 도서관 직원들에게는 한완상(韓完相.65)교육 부총리가 바로 그런 주인공이 됐다.

그가 지난 1일 "대학 개혁을 모범적으로 수행한다"며 성균관대에 개인 소장 서적 1천6백39권을 기증한 것이 계기다.

대부분 누렇게 변색된 영문(英文)전공 서적. 그 속에 자신의 37년 세월이 감춰져 있었음을 韓부총리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청년 한완상'부터 시대를 고민하는 모습 등이 책장 여백에, 또는 책갈피 사이에 끼인 수십장의 메모지에서 나왔다.

가장 오래된 것이 한 전공 서적 표지 안쪽에 쓴 '형이의 소식을 기다리며 1965.8.18'.

미국 에모리대 대학원에 다니던 그가 현재의 부인 김형(金馨.58.YWCA 이사)씨에게 연애편지를 보낸 뒤 적은 심경이다.

그는 8개월간 2백통쯤 편지를 보낸 끝에 66년 2월 결혼한다. 그때 끼워둔 듯한 마른 단풍잎 한개도 나왔다. 테네시주립공과대 사회학과 조교수로 궁핍했던 67년 10월 한 책 속에선 '두번째 月給 얼마?'란 메모도 나왔다. 75년 5월 한 사회과학책에는 '여러가지 역경을 한꺼번에 맞으면서 우울하던 때'라고 적혀 있다. 유신반대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뒤 서울대에서 해직(사회학과 교수)됐던 때다.

『Socialogy of Religion』이란 책 표지 안쪽에는 80년 7월 26일자 '도서반입 허가증'이 붙어 있다. '수번(수형번호)58, 성명 한완상'. 당시 그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여 옥살이를 했다.

'主 안에서 민족통일을 바라며 부총리.통일원장관 한완상'(93년 3월 9일 성경전서)이란 통일 부총리 시절의 글도 있었다.

큰딸 미미(34)씨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88년), 제자로 보이는 남학생과 찍은 사진, 각종 강의 메모와 영수증도 나왔다. 성균관대에는 기증도서 분류가 끝나는대로 내년초 도서관에 '한완상 문고' 코너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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