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남조 '그림엽서'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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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여행지 상점가에서

그림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별달리 이름 환한

사람 하나 있어야겠다고

각별히 절감한다

이국의 우표 붙여

편지부터 띄우고

그를 위해 선물을 마련할 것을

(중략)

여행지에서

그림엽서 몇 장 고를 때면

불켠 듯 환한 이름 하나의 축복이

모든 이 그 삶에 있어야함을

천둥 울려 깨닫는다

-김남조(1927~) '그림엽서'중

책상 서랍 속에 가득 쌓여 있는 이국의 그림엽서. 푸른 창문, 시간이 삭아 있는 집, 흐린 골목, 이름 모를 꽃, 얼굴, 오래된 정원, 바닷가의 하얀 궁전….

낯선 길모퉁이의 카페 테라스에 커피 한잔 시켜놓고 앉아서 담배도 피우고 생각에도 잠기며 그리운 사람에게 짧지만 정겨운 사연 적어 보내고 싶어서 샀었다. 그러나 엽서는 끝내 쓰지 못한 채 그냥 가방에 담아왔다. 어느 날 담배도 끊었다. 그림엽서는 이제 누렇게 퇴색해 버렸다. "빨리 가세요, 편지 쓰게" 하고 떠밀던 그 "환한" 얼굴들 다 어디로 갔나□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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