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로비스트와 정치 브로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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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심부의 커넥션, 당신들의 거래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진승현 게이트가 재수사에 돌입하면서 커넥션과 거래의 한가운데 정치브로커가 있음이 밝혀지면서 한국사회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미 예고된 우려였지만 대형 사고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추락의 끝이 안보이는 정치권의 도덕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고비용 정치구조도 문제

정치브로커, 그들은 누구인가. 여기저기에서 이권을 물고 와서 권력의 실세와 연결시켜 주며 돈을 챙기는 자들이다. 인맥과 돈을 맞바꾸는 검은 거래의 거간들이다.

이러하기에 하는 일이 적절할 리가 없다. 일명 '여의도 브로커'로 불려지기도 하는 이들은 정치권력의 언저리를 횡행하며 한국사회의 부패구조를 전방위적으로 재생산하는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신분과 정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이 투명할 리가 만무하다.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당 주변에서 당을 위해 일한 사람으로 비상임 부위원장이 주요 직함이다. 정권창출의 공신세력으로 격조 있는 대접을 받고 있다. 거래를 수행할 만한 이렇다 할 전문성은 없지만 정치권력 핵심부와 안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은 거래의 중간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치 브로커의 활동무대, 왜 이리도 넓은가. 지금과 같은 고비용의 정치구조와 누구를 아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연줄망의 사회구조 속에서 정치 브로커의 활개는 극히 당연한 결과다. 근자에 들어서는 폭력의 세계와 손을 잡으면서 활동영역과 범위가 엄청나게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에 정치 브로커의 검은 거래를 차단할 시스템은 대단히 원시적이다. 한국사회를 무소불위의 정치 브로커 세상이라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사회나 도덕적 해이는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처벌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가 오늘날 같은 글로벌 시대의 선진과 후진을 가름하는 잣대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리의 관리방식이 시대환경에 비해 대단히 원시적임을 숙지하고,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썩지 않으려면 투명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미국 로비활동법의 입법취지다.로비활동을 공개적으로 보장하되,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외국 대리인 로비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발의돼 있는 상태고,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시민단체 역시 로비활동 관련법 제정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돈정치를 막고 정책 결정과정을 대안과 논리의 대결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우리나라에서 로비스트하면 부정부패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이 학연.지연.혈연 등 연고에 의해 이뤄지는 사회 이면을 생각해보면 로비제도의 실질적 기능에 대해 우려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로비제도의 법제화를 추진하더라도 부정을 양성화하거나 힘있는 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로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 뒷거래 차단 장치 마련을

물론 진승현 게이트의 정치 브로커는 입법활동이나 정책결정과는 관계가 없는 정직하지 못한 뒷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작금의 정치 브로커 문제해결을 위해 로비 법제화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다만 음성적 로비활동으로 인한 부패구조의 틀을 어떤 형태로든 차단하는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정직하지 않게 음성적 뒷거래의 형태로 나타난 정.관가 주변에서 이뤄지는 브로커 형태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클린21을 내세우며 권력형 부패의 척결을 외치지만 바로 그 권역의 옆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슨 게이트니, 정치 브로커니 하는 것들을 보면서 국민은 겉으론 침묵하지만 여기가 내가 정 붙이며 살아가야 할 나라인가를 자꾸만 되묻고 있다. 어느 사회고 가진 자들이 룰을 깨고 막가파로 나가면 그 사회는 마지막이다.

朴吉聲(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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