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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빈 라덴 '9·11 테러 기획 증거' 테이프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미 국방부는 13일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를 기획했다는 증거로 아프가니스탄 동부 잘랄라바드의 한 민가에서 입수한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1시간짜리 테이프에서 빈 라덴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테러 시기와 수단, 예상결과 등을 언급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체포할 경우 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할 계획이지만 일부 아랍권에서는 "내용을 믿을 수 없다"며 의구심을 품고 있다.

◇ 어떤 내용 담겼나=빈 라덴은 측근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족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9.11테러를 회상했다.

그는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의)3~4개층에 부딪칠 것으로 계산했다"며 "비행기 연료에서 나오는 화염으로 철골이 무너져 비행기가 충돌한 부분과 그 윗부분이 붕괴할 것으로 계산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물 붕괴가 자신들이 원했던 모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빈 라덴은 또 "형제들은 순교 임무라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작전내용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그들 각자에게 미국에 갈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 증거력 놓고 논란=미 법률전문가들은 국방부가 테이프 입수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거나 큰 오역이 없을 경우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빈 라덴이 체포될 경우 변호인측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입수한 불법증거"라고 대응할 수 있지만, 연방대법원이 1990년 외국에서 수집한 증거의 경우 이같은 헌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례를 남긴 적이 있어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비디오 테이프의 음질이 떨어져 정확한 아랍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데다, 테이프를 영어로 통역하는 작업에 미 정부가 고용한 인력이 참가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AP통신은 통역 작업에 참여한 이집트 출신 조지 마이클을 인용, "통역사들이 의견 충돌을 보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 각국 반응=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빈 라덴이 인명을 경시한다는 증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레바논 일간지 아스사피르의 사테 노우레딘 편집국장은 "빈 라덴은 식사시간에 일상적인 대화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요르단의 정치분석가 라비브 카마위도 "빈 라덴이 테러 공격을 찬양한 것은 맞지만 그에게 책임이 있다는 증거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서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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