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빗속의 봉하…1만5000개 추모 박석 위로 나비 523마리 날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노무현 1946~2009, 1주기 추도식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김해 봉하마을은 굵은 빗줄기에도 추모객으로 붐볐다. 이들은 마을 입구에서 차량통행이 통제되자 인근 본산공단 도로 등에 차를 세워둔 채 1㎞가량을 걸어 추도식장으로 향했다.

진입로 가드레일에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과 추모 글을 적은 노란 리본·풍선·바람개비 등이 수없이 내걸려 물결을 이뤘다. ‘그 시절을 다시 만듭시다’ ‘당신의 뜻 잊지 않겠습니다’ 등 추모 글은 다양했다.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의 49재가 거행된 봉화산 정토원에서 추모법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무대행 등 야당 대표와 참여정부 인사, 불자, 참배객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법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와 법타 스님(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이 고인의 뜻과 이상을 기리는 추도사를 했다. 법당 안에는 노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정이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오후 1시30분이 되자 묘역 바로 옆 공터에서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추도식이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애국가 제창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될 즈음, 추도식장 인파는 3만여 명에 달했다.

이어 오후 2시가 되자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도종환 시인이 추도사를 했다. 이 전 총리는 “대통령님이 펼치셨던 정치와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굴곡 많았던 인생역정이 소중하게 다가온다”고 회고한 뒤 “대통령님의 염원과 열망을 우리가 이루는 날까지 당신의 부활을 준비하겠다”고 추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 및 박석 묘역 완공식이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묘역과 시민이 기부한 1만5000여 개 박석(두께 10㎝, 가로·세로 20㎝) 헌정사를 낭독했다. 영화배우 문성근·명계남씨가 시민이 기부한 박석 가운데 “제 심장이 뛰는 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등 추모 글을 낭독하며 울먹이자 추모객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유족을 대표해 “1년 전 오늘을 돌이켜 보면 비통함을 가눌 길이 없다”며 “그날의 비극보다는 당신이 걸어오셨던 길, 당신이 걷고자 했던 길을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통함과 슬픔을 함께한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이어 시민 조문단 100명이 5월 23일을 상징하는 나비 523마리를 날렸고 3대가 추모 박석을 기부한 유복순씨 등 4명이 전체 박석 기부자 1만5000여 명을 대신해 박석 4개를 마지막으로 놓는 의식에 참여했다. 유족과 내빈이 헌화·분향하면서 1시간40여 분간의 추도식은 마무리됐다.

추도식에는 정세균(민주당)·강기갑(민노당)·송영오(창조한국당)·이재정(국민참여당) 등 각 당 대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김덕룡 대통령실 국민통합특보 등이 참석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당 대표로 참석했다.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무대행 등 참여정부 인사도 자리를 지켰다. 한명숙·유시민·안희정·이광재·김두관·김정길·김원웅 등 범야권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참석해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봉하마을에 왔다. 세상이 어지럽고 불안하니 노 전 대통령이 간절하고 그립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 이룬 꿈 이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김무성 원내대표가 식장에 입장할 때에도 일부 소수 추도객은 “네가 어떻게 여기 오느냐!”고 소리지르거나 욕설을 했다. 그러나 대다수 추도객은 이들을 받아들여 추도식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김 원내대표는 건호씨가 유족 인사를 할 때 고개를 한동안 떨궜다. 그는 추도식이 끝난 뒤에는 박석 위에 헌화를 했다. 김 원내대표는 “오늘 한나라당 대표로 왔다. (일부 추도객이 욕설을 했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추도식을 주최한 봉하재단 김경수 사무국장은 “이날 하루 10만 명의 추모객이 봉하마을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추도식 뒤에는 묘역이 공개돼 일반인이 잇따라 참배했다.

김해=황선윤·백일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