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트] '화산고' 컴퓨터그래픽 '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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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영화 '화산고'가 화제다. 얘기의 중심은 컴퓨터 그래픽(CG)이다.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와이어 액션도 종전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고난도임에 분명하지만 '화산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CG다. 손에서 엿가락처럼 뻗어나오는 장력(掌力), 사람의 몸 둘레를 빙빙 도는 물방울, 절대 물러날 수 없는 무협 고수들의 기(氣)싸움, 사방으로 흩어졌다 용모양으로 모이는 찻잎 등 환상적 화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작업 과정은 속된 말로 '노가다'다. 관객들은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놀라겠지만 '화산고'의 CG는 1백% 수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고'의 CG를 총괄한 모팩의 장성호(31)실장은 "끔찍하다, 막노동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예컨대 '화산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폭우 장면. 쏟아지는 빗발 가운데 30%는 컴퓨터로 그려넣은 것이다. 또 두세개의 피아노줄을 쓰는 다른 영화의 와이어 액션과 달리 '화산고'에선 대여섯개의 피아노줄을 사용, 이 줄을 지우는 데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

'화산고'의 클라이맥스로 꼽히는 마지막 운동장 결투 장면. 관객들은 김경수(장혁)와 수학교사(허준호)의 숨가쁜 격돌에 손에 땀을 쥐었겠지만 CG 관계자들은 원래 필름에 함께 찍혔던 여러 스태프와 너저분한 세트, 그리고 발전차.크레인 등 각종 장비를 지우느라 쉴 새 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산고'에 동원된 CG인원은 50여명. 총 9개월 동안 매달렸다. 한국영화엔 편당 5~6명의 CG인력이 참여하는 게 관례다. 63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화산고'에서 CG에 들어간 비용은 8억원 정도. 하지만 장실장은 그것은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이라며 엄격히 따지면 10억원이 넘게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화산고'의 색보정은 1백% 디지털 작업으로 진행됐다. 촬영된 화면을 컴퓨터로 스캔하고, 이후 전체 색조를 환상적 분위기가 나도록 암녹색으로 조정했다. 반면 등장인물의 피부는 실제대로 유지했다. 즉 등장인물의 피부색과 배경을 따로 작업하고, 나중에 두 화면을 합성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장용 필름을 출력하는 방식이다.

장실장은 "한국영화의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작심하고 달려들었다"며 "할리우드처럼 CG 준비에 2~3년을 투입했다면 보다 훌륭한 영상을 보여주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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