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카트린 M의 성생활'과 우리네 음란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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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카트린 M의 성생활』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찬비가 밤 사이 눈으로 바뀐다는 일기 예보가 있던 날 밤새워 읽었습니다.

비가 눈으로 바뀌어 이제나 저제나 첫눈을 보나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책을 놓기가 아까웠습니다. 미주 지역으로 출장 가서 플레이 보이 유료 TV 포르노를 보며 꼴딱 밤을 지새운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여성이 수십.수백명의 남자들과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섹스로 시종일관한 이 책은 포르노 화면을 보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틀림없이 책을 읽고 있는데도 책에 쓰인 글자들은 언어의 지시 기능에만 충실할 뿐 그 너머의 어떤 뜻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언어를 통해 드러내고 하소연하고 싶은 필자의 욕구, 언어에 덧씌워진 이러저러한 시대적.사회적 의도나 책무를 다 털어내버린 언어들이 펼치고 있는 섹스의 현상학이 이 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기자인 나의 책무에 대해 많은 것을 묻게하고 망설이게 했습니다. 우선 이 책을 독자 여러분께 정색하고 비중 있게 소개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었습니다.

문제 작가의 작품으로 외설성이 짙어 화제와 논란을 부를 것이 뻔한줄 알면서도 소개를 아예 안 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논란을 일으켜 책을 팔아보겠다는 상업성과 그 외설적 유해성에 지면을 내줄 수 없다는 제 나름의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성행위의 적나라한 묘사이면서 기이하게도 말초신경은 자극되지 않는 이 작품은?

둘째는 우리 소설에 나오는 성 묘사와 이 책의 다른점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올 4월 이 책이 나오자마자 르 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은 "가명 뒤로 숨지 않고, 죄책감도 포교의 열정도 도발 취미도 표명하지 않고, 섹스에 대한 일종의 신비화를 기도하지 않고, 복종이나 지배에 대한 혼미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은 아주 훌륭한 책"이라는 등으로 호평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여대생의 온갖 성행위를 다룬 마광수씨의 『즐거운 사라』에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여고생과 중년 기혼 남성의 성행위를 다룬 장정일씨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도 "묘사가 아주 노골적이고 구체적인데다 변태적 성행위"의 음란문서라며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온갖 변태적 성행위 지침서로도 기능할 수 있는 『카트린 M의 성생활』은?

때문에 마지막으로 성행위 묘사전략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소설들은 마광수씨가 밝힌 대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 문제"나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에 대한 반항이나 해방 등의 의도 혹은 가면을 쓰고 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르 몽드 서평대로 의도나 가면이 없습니다. 개인적 욕구나 사회적 책무를 훌훌 털어버려 일단은 사회 풍속을 해친다는 혐의에서의 자유를 스스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순응도 반항도 아닌 성, 해방을 통해 더 높은 가치나 질서를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닌 성 스스로의 성.

이것이 해방된 성 자체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꾸밈 없는 묘사로 드러난 성 스스로의 모습, 그 자유인 『카트린 M의 성생활』은 저뿐 아니라 우리의 '음란 법정'과 작가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주었으면 합니다.

이경철 문화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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