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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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구촌 종교지도자 중의 한명으로 꼽혀온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의 이 책을 옮긴 사람은 개신교 목사다.

'이 아무개'라는 필명도 쓰면서 『장자 산책』 등을 펴내온 그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옮긴이 말'을 책 뒤에 남기고 있다.

"미국에서 신부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틱낫한 스님의 책을 열두권이나 쌓아 두고 읽은 저는 참 행복합니다. 좋은 사람한테서 좋은 기운이 나오듯 좋은 책에서도 좋은 기운이 나옵니다. 옮긴이도 행운아이지만, 독자 여러분께서도 행운아 이십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1백63쪽 요약)

이 말은 사실이다. 반세기 전 스님이 겪은 첫사랑을 이토록 정갈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하는 놀라움 때문이다. 그것이 서구적 로맨스의 몸살 앓기와는 분명 다르고, 그 얘기가 대승불교의 『유마경』 『반야경』에 대한 눈높이 설명과 얽혀 들어간다. 따라서 첫사랑과 불교 얘기는 불이(不二)의 관계인데 이런 귀한 읽을거리를 대하는 방식은 무언가 달라야 하다.

저자의 권면은 이렇다.

"법우(法雨)가 땅에 스며들도록 하십시오. 온몸과 온마음으로 이 자리에 현존하세요. 그러면 법우가 여러분의 잠재된 의식 깊숙이 묻혀 있는 씨앗에 촉촉히 스며들 것입니다."(22쪽)

스토리는 이렇다.스님은 반세기 전 한 여승을 만났다. "신선한 미풍이 얼굴 위로 불어오는 듯했다"라고 스님은 묘사한다. 드라이 하면서도 품격이 높게 서술이 된다.

여러 차례의 만남이 오고갔고, 그건 사랑이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이쯤해서 스님은 선가(禪家)의 공안 하나를 독자들 앞에 툭 던져놓는데, 이게 울림이 만만치 않다.

"어버이가 태어나기 전의 본디 네 모습이 무엇인가? 이말은 여러분의 참 얼굴을 발견하는 여행으로 모시는 초대장입니다. 여러분의 첫 사랑을 들여다보고 그것의 참얼굴을 애써 찾아보십시요. 여러분의 첫사랑이 맨 처음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첫 사랑은 여전히 여기 있으며, 언제나 여러분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명상의 주제입니다."(33쪽 요약)

어디 화두가 쉽게 풀리는가□ 그저 법우를 받아들이듯 되읽을 뿐이지만, 읽는 맛은 쾌적하다. 분명한 건 이미 10종 가까이 국내에 소개된 틱낫한 스님의 저술은 불교 지식상품 중 으뜸이라는 발견이다. 이런 성취는 불교를 '우리시대의 언어'로 바꿔놓는 작업에 힘입고 있다.

따라서 이번 리뷰는 국내에 불교 지식상품 개발 대망(待望)으로 연결된다.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바 있는 틱낫한 스님은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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