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노사관계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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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재의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기업주도 근로자도 국민도 모두가 불만이다.

기업주들은 정리해고가 어려워 구조조정이 안된다고 불만이고,노동계는 해고위협.비정규직의 증가 등으로 노동복지가 크게 악화됐다고 불만이다. 노사 모두가 불만이니 현재의 노사관계는 반드시 개선되고 바뀌어야 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 과학화 덜 된 임금결정制

첫째, 우선 임금결정제도의 과학화가 시급하다. 현재는 노사간 단체교섭을 통한 임금결정이 가장 지배적인 형태다.구미(歐美)에서 도입된 이 노사대결형 임금결정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실증분석을 보면 어느 기업,어느 산업이든 임금상승률은 중장기적으론 노동생산성증가율과 일치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봐도 그것이 효율적이고 공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매년 연례행사처럼 노사가 서로 대결하고 투쟁해야 하는가. 결과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임금결정을 노사에게만, 그것도 대결형 단체교섭제도에만 맡겨 매년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낭비를 양산할 필요가 있는가.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정중재기구(임금위원회)를 활성화해 노사를 설득하며 '임금상승률=노동생산성증가율'을 유도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과학적 임금결정을 위한 노사전(勞使專)간의 협력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고용조정제도의 합리화가 필요하다. 현재는 고용조정을 노사에게만, 노사간의 힘의 대결에만 맡기고 있다. 기업주는 해고의 자유를, 노동자들은 해고반대를 주장하며 대결한다. 그런데 이는 잘못이다. 고용조정의 문제는 노사에만 맡겨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취업에서 실업으로의 지위변화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이 기업에서 정부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실업자들에게 사회적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재취업을 위한 구체적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특히 지식정보화 시대인 21세기의 고용조정은 실업기간을 재취업을 위한 향상훈련, 평생학습의 기회로 조직화 해내야 한다. 따라서 '취업→실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업→교육→재취업'으로 연결시키는 합리적 고용조정 시스템을 노사정학(勞使政學)이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이것이 '평생학습-평생고용' 시대에 요구되는 국가능력이다.

셋째, 이상과 같이 임금결정과 고용조정이라는 노사대립 사항이 해결되면 남는 것은 노사협력 사항이 남는다. 세계화.정보화시대에 가장 중요한 노사협력 사항은 노사가 합심해 직장을 학습조직으로 만드는 데 있다. 앞으로는 기업의 발전(국제경쟁력)도, 노동자들의 복지(취업능력과 임금수준)도 모두 근로자들의 기술 지식 정보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을 어떻게 효율적 교육기관으로, 평생학습기관으로 만들어 근로자들의 기술 지식 정보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느냐가 기업발전의 핵심전략이 돼야 하고 노동운동의 궁극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발전하고 노동자들의 복지도 향상될 수 있다.

*** 노동운동 디지털화 해야

넷째, 다음은 노동운동을 디지털화해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인터넷 인구가 2천5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정보통신기술(ICT)을 노동운동에 적극 활용해야 노동운동의 미래가 열린다.

노동운동은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다양화하는 고용형태(서비스화. 비정규직화 등)에 맞는 새로운 조직확대 전략을 추진하고▶노조 내 의사소통의 활성화를 통한 조합민주주의의 달성▶ 조합원 개개인의 생활복지.가족복지를 높이기 위한 노조활동강화(소비.건강.자녀교육 등)▶노동운동의 국제연대활동 확대▶전문가단체.시민운동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노동조합의 정책능력 제고 등을 이룩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노사 모두 불만인 노사관계를 이대로 두고 우리의 21세기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기본발상과 철학을 전환해야 할 때다.

朴世逸(서울대 교수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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