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당신의 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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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10면

일요일 새벽 당신은 잠에서 깬다. 집에 식구가 아닌 다른 존재의 기미를 느낀 것이다. 거실의 전등을 켜는 순간 당신은 기미의 실체를 발견한다. 바퀴다.
“좀 나와봐요. 천장에 바퀴가 있어.”
당신으로선 비상 사이렌을 울린 셈이지만 남편은 이불 속에서 나올 생각도 안 한다.
“일요일이잖아. 제발 좀.”
집 안에 바퀴가 출몰했는데도 남편은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누웠다. 남편의 현실인식처럼 안이하게 늘어진 이불을 당신은 확 걷어낸다.
“거실 천장에 바퀴가 있다잖아. 바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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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겨우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그런 줄 알았는데 거실을 지나쳐 화장실로 간다. “어디 가?”라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당신은 가까스로 참는다. 남편은 오줌을 눈다. 오래. 남편의 가늘고 힘없는 오줌소리가 울리는 일요일 새벽. 당신은 다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은 것을 듣는다. 똑, 똑, 똑. 마침내 오줌을 다 눈 수도꼭지는 당신 옆에 아니 뒤에 와서 선다.

침입자는 전등에서 15㎝ 정도 떨어진 지점에 멈춰서 있다. 강철처럼 단단하고 매끄러운 놈의 짙은 다갈색 바디가 삼파장 램프 불빛에 빛난다. 당신은 40여 종의 병원균을 지닌 놈의 더듬이가 부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런 시국인데 당신의 남편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어쩌지?”
“어쩌긴. 잡아야지!”

당신은 두루마리 휴지를 뜯어 남편에게 준다. 남편은 촌지라도 받은 사람처럼 기겁하며 당신에게 휴지 뭉치를 돌려준다.
“인터넷으로 검색부터 해보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잖아.”

당신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일단 바퀴부터 잡고 볼 일이라서 묵묵히 휴지 뭉치와 의자를 남편에게 건넨다. 당신의 서늘한 눈빛과 단호한 입 모양 때문이었을까. 남편은 휴지를 들고 의자 위에 올라선다. 엉덩이를 잔뜩 뺀 남편의 엉거주춤한 자세가 당신은 못마땅하다. 바퀴처럼 재빠르고 교활한 놈을 공격할 때는 기세는 폭풍 같아야 하고 타격은 벼락 같아야 한다. 그러나 겁 많고 우유부단한 남편은 휴지로 놈을 누르는 결정적 순간에 머뭇거린다. 바퀴는 초당 28㎝를 이동하는 민첩성으로 달아난다. 뿐만 아니라 다갈색 강철 날개를 펼치며 남편의 놀란 눈앞에서 우아하게 3회전 공중비행을 한 후 책장 뒤편으로 사라진다. 한심한 남편과 그 남편과 함께 사는 당신을 비웃으며.

실패한 자는 말이 많은 법이다. 애당초 휴지로 잡으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중력의 법칙이란 게 있는데 바퀴가 바닥으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신문지 같은 것으로 한 번에 쳤어야 했다, 먼저 검색을 통해 바퀴에 대해 제대로 알았어야 했다 등등. 남편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더니 이제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거실에 남아서 남편이 달아난 안방을 노려보는 당신의 머릿속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다닌다. 당신의 소중한 그릇과 이불과 속옷과 아이들 몸을 맘껏 유린하고 알을 까는 것은 바퀴가 아니라 불안이다. 당신도 안다. 그러나 불안은 바퀴보다 민첩하고 번식력이 강하다. 한 마리의 불안은 금세 수백 마리가 되고, 수십만 마리가 되어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집과 온 우주를 잠식한다. 가족이 모두 잠든 일요일 새벽. 당신은 팔을 걷어붙이고 책을 뽑기 시작한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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