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마종기 '그림 그리기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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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

한 그루 나무를 그린다,외롭겠지만

마침내 혼자 살기로 결심한 나무.

지난 여름은 시끄러웠다.이제는

몇 개의 빈 새집을 장식처럼 매달고

이해 없는 빗소리에 귀기울이는 나무.

어둠 속에서는 아직도 뜬소문처럼

사방의 새들이 날아가고,유혹이여.

눈물 그치지 않는 한 세상의 유혹이여.

2.

요즈음에는 내 나이 또래의 나무에게

관심이 많이 간다.

큰 가지가 잘려도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고

잠시 눈을 주는 산간의 바람도

지나간 후에야 가슴이 서늘해온다.

인연의 나뭇잎 모두 날리고 난 후

반 백색 그 높은 가지 끝으로

소리치며 소리치며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마종기(1939~)'그림 그리기 4'

가슴 한구석 허전해지는 겨울날엔,낡은 세간살이 옷가지 어지러운 옹색한 아파트에 몸담아 살지라도 넓은 여백을 가진 이런 '세한도' 한 폭 마음에 걸어두고 자주 거기에 눈을 주며 정원을 삼자.'식물적 삶'이라고 꼬집는 '동물적' 비아냥도 '산간의 바람'인 양 못들은 척,무심한 우듬지로 하늘을 보자.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지.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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