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임란 전 동인·서인처럼 다투어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정부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결정적인 증거도 함께 제시했다. 이제야말로 천안함 비극을 둘러싼 논란을 종결짓고 북한으로 하여금 사과하고 다시는 이 같은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방안을 강구할 때다. 그럼에도 정부의 발표가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 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얻고자 하는 선거철이 아닌가. 또 북한과 ‘열애’라도 하는 양 천안함 사태를 북한과 절대로 연계시켜서는 안 된다고 억지를 부려온 사람이 꽤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원래 한 나라의 안위(安危)란 공동선의 문제이기에 선거나 정쟁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런데도 북한의 소행에 분노하는 민심에서 기인하는 ‘북풍’이 불면 한나라당이 유리할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풍’이 불면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들이 호사가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별문제가 아니겠으나, 책임 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정말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다.

국가안보는 한나라당의 것만도, 보수우파의 몫만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외부의 사악한 공격에 단호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당당한 국가가 되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만 좋아지고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은 불행해지거나 낭패를 보는 것인가. 안보를 외면하면서 번영할 수 있는 정당이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새의 둥지가 부서지는 마당에 그 안의 어떤 알도 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안보 문제는 정파적 사안처럼 여야 정쟁이나 보혁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서는 안 된다. 천안함 비극의 진실을 공유하고 국가를 위해 꽃잎처럼 스러져간 용사들의 명예를 바로 세우는 일이 왜 선거 이슈나 정쟁거리가 돼야 하는가. 불시에 대한민국을 기습 공격한 호전집단에 대해 단호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대의 앞에 아무리 선거철이라고는 하나 ‘북풍’이 불기를 원하는 ‘북인(北人)’이 있고, ‘노풍(盧風)’이 불기를 기대하는 ‘노인(盧人)’이 있어 서로 소인배처럼 다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기야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안보를 두고도 정쟁에 몰두한 사례가 있다. 임진왜란 직전 동인과 서인이 그랬다. 동인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되지 못한다고 일축한 데 비해 서인 황윤길은 그가 충분히 전쟁을 일으킬 만한 탐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상반된 주장에 대해 조정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결국 그것은 천추의 한이 되고 말았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동인’과 ‘서인’의 적전 분열 모습을 재현하는 것은 공동체의 뼈아픈 실패를 반복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지금은 영락없이 조선시대의 동인과 서인이 옷만 갈아입고 ‘북풍’을 원하는 ‘북인’과 ‘노풍’을 원하는 ‘노인’으로 환생해 지방선거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선거에서의 승리 이상을 의미하는 고귀한 어떤 삶인데, 한 나라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선거에서의 승리만 원하는 속물근성의 ‘선거꾼’처럼 산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같이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해도 ‘동상이몽(同床異夢)’처럼 다른 꿈을 꿀 수는 있다. 그것이야말로 원수관계에 있던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형국일 터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운명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아니다. 평소에는 ‘명박사랑’과 ‘노사모’도 다툴 수 있고, 반공주의자와 친북주의자도 갈등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우리 배를 지키던 초계함이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는 진실 앞에서도 북풍이 불까 걱정하는 나머지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거나 대북 증오정책을 써서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면, 임진왜란전 대의를 보지 못했던 소인배의 비열한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지를 달릴 때보다 언덕을 올라갈 때 말의 역량이 드러난다고 설파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역량도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때보다 위기와 시련에 직면했을 때 드러난다. 이제 천안함 비극의 진실이 밝혀진 마당에 백가쟁명이나 중구난방식의 논란을 거듭하기보다 국가안보라는 대의와 진실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 바로 그것이 바다를 지키다 우리 곁을 떠나간 용사들의 간절한 소망이며 유훈일 터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