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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심한 주택임대차법 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회가 지난 주말 회기에 쫓겨가며 통과시킨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그 개정 과정이 의원 입법의 부실화 우려를 입증(?)한 최악의 법 개정이라 할 만하다. 여야 모두 민생을 살펴 제대로 입법활동을 해낼 능력이 있는지 심각하게 자문(自問)해볼 일이다.

법의 제.개정에는 절실한 필요성 외에 다각적인 논의, 그리고 법 개정이 몰고올 부작용까지 면밀한 검토가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입법과정에서는 어디서도 그런 신중함을 찾을 수 없다.

올 들어 소형주택 공급이 줄어든 데다 저금리 기조가 자리잡으면서 전.월세값이 급등,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면서 서민들이 적지 않게 피해를 본 게 사실이다. 개정 조항은 이를 감안해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월세 이자율을 제한해 서민의 부담을 덜어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다 해도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면 법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기존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집 주인은 전세 계약기간(2년)동안엔 전세를 월세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또 계약기간이 끝나면 기존 세입자와 다시 계약해야 할 의무가 없다.

계약기간이 끝난 뒤엔 집 주인은 월세로 바꾸고 싶으면 다른 사람과 계약하면 되며 이때는 법으로 월세 이자율을 제한했다 해도 이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개정 법은 현실에서 적용될 경우는 적고 자칫하면 월세 이율 제한으로 전세금만 뛰는 혼선만 자아낼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서는 개정안이 발의된 뒤 공청회는 물론 제대로 된 당정 협의조차 없었다. 법안을 낸 의원마저 법안 처리 과정을 몰랐다고 한다. 난처한 쪽은 행정부다. 실질적으로 이 법 시행을 뒷받침해야 할 건설교통부도 법 개정 통과 때까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경제.사회 현상은 전문화.다기화돼 법체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국회의 법 심의는 갈수록 부실해지고 있다. 인기나 표만을 의식한 현실성 없는 입법 사례다. 여야가 계속 정쟁만 앞세운다면 앞으로도 어떤 졸속 입법이 더 나올지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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