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와그너 전 하버드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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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7일 오후(미 현지시간) 77세를 일기로 타계한 에드워드 와그너 전 하버드대 교수. 그는 한국학 개척과 발전에 헌신해온 미국 내 한국학 연구의 대가다.

서강대 백승종(역사학)교수는 "고인의 연구로 조선의 민족성이 원래 당파적이라는 일제 식민사관을 넘어설 수 있었다"며 애도했다. 白교수는 또 "그는 논문을 통해 조선의 빈번한 사화(士禍)가 당파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권력 간의 정치적 충돌이라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와그너 박사의 학문적 노력 덕택에 미국 대학에선 처음으로 하버드대에 한국학 강좌가 마련될 수 있었다.

그는 하버드대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뒤 1959년 조선시대 사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1972년 하버드대 출판국에서 『사화:조선 초기 정쟁』(The Literati Purges:Political Conflict in Early Yi Korea)으로 출간됐다. 이 논문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분야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와그너 교수는 학위를 딴 직후 모교에서 동아시아 역사과의 교수에 임명돼 한국어와 한국사를 강의했다. 그의 부인인 김남희(金南姬)여사도 곧 이어 한국어 강좌를 맡았다.

고인은 37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한국학의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으며 그 결과 그가 이끈 한국학 연구는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와그너 박사의 제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한국학계에서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1985년부터 2년간 하버드대 객원교수로 근무한 서울대 권영민(국문학)교수는 "고인은 70년대 이후 하버드대에서 한국학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 미국의 한국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학자"라고 평했다. 權교수는 "와그너 박사 부부는 우리나라의 언어와 역사.문화를 미국 지성계에 심는 데 크게 공헌했다"며 추모했다.

와그너 박사는 95년 하버드대 은퇴 이후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전북대 송준호 명예교수와 함께 필생의 연구작업인 '문과(文科)프로젝트'에 매달려왔다.

60년대 말부터 시작한 이 연구는 조선시대 지배층 10만여명에 대한 기록이 담긴 '문과방목(文科榜目)'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 연구내용은 최근 '보주조선문과방목(補註朝鮮文科榜目)'(동방미디어)이라는 CD롬으로 나왔다.

이웅근 동방미디어 회장은 "한국학의 세계적 보급에 헌신해 온 고인에게 우리 정부가 금관문화훈장 이상의 치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서강대 이기백 명예교수의 『한국사신론』을 영역했다.이 책은 한국사 관련 서적으로는 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으며 명번역서로 정평이 나있다. 연락처 1(미국)-781-8611970.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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