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 교수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보루가 무너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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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말이 있다. 이를 아주 설명력 높게 서술한 책도 있다. 묘한 논리이고 묘한 현실이다. 대다수 인간은 도덕적인데 그 도덕적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는 어째서 비도덕적일까. 사회는 어느 사회든 기본적으로 도덕적 공동체다. 도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그런데 어떻게 그 사회가 비도덕적이라는 말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절대다수가 이익집단이고, 그 이익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높이고 자기집단의 이기주의를 충족하려 광분하기 때문이다.

그 광분하는 것만큼 집단들의 행동은 도덕적 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법과 제도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또한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있어 그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경쟁을 하도록 조정하고 감시한다. 도덕도 그렇게 해서 일정수준에서 지속돼간다.

*** 도덕적인 교육자 집단

그렇다 해도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집단이 다 이익집단인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 집단이 교육자집단이다. 교육자들이 만드는 집단은 그 어떤 집단이든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일 뿐이다. 교육의 질과 직결되지 않는 교육자들만의 이익증대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만큼 교육자집단은 사회 내 어떤 집단보다 도덕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자집단은 어느 사회에서나 예외 없이 도덕적 보루(bulwark)가 된다.

사회는 전장터나 다름없이 끊임없이 분쟁과 분열 해체현상을 야기한다. 보루 없이 전쟁할 수 없듯이 사회라는 이 격렬한 전쟁터 역시 도덕적 보루 없이는 존재 자체를 지탱해 갈 수가 없다. 정치인도 공무원도 기업인도 근로자도 교육자 집단만큼 도덕적 집단이 되지 못한다.

못하는 것만큼 그들에게서 사회를 지키는 도덕적 보루 기능을 기대할 수가 없다. 거의 유일하게 교육자집단이 보루가 되고, 어떤 곡절을 겪든 지금까지 이 집단이 우리 사회에서 그 보루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 교육자집단이 지금 집단 안팎의 공략에 의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온갖 수모와 모욕, 갖은 상처를 입고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학부모는 '당신도 돈 받고 하는 직업 아니냐'며 학생 앞에서 선생에게 삿대질을 한다. '나이 많은 교사는 나쁘고 무능하고 부패했다'며 외쳐대고, '늙은 교사 한명 몰아내면 젊은 피 2.5명이 들어간다'며 아예 선생을 '몰아내는'대상으로 전락시킨다.

교원 정년단축이 마치 교사 스스로의 무능과 과오와 비도덕성에 의해 자초된 양 합리화하고, 학부모 몇십%가 정년단축을 찬성한다며 여론몰이까지 하면서 정당성을 강조한다. 오죽했으면 정년단축으로 그만둔 선생보다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선생을 할 수 없다며 교직을 버린 40대 선생이 더 많다고 하는가.

어느 선생이든 잡무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잡무 때문에 학생은 틈틈이 가르친다고 말하는 선생도 있다. 아침 6시반에 집을 나와서 밤 10시가 돼도 퇴근이 어려운 날이 비일비재하고, 그러면서 월급은 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기생에 비할 바가 못된다.

교실은 '열린교육'으로 난장판이 되고, '공부 안해도 대학 간다'는 어느 유토피아 사전에도 없는 지침서로 선생의 의의도, 가르침의 의미도 죽어가고 있다.

*** 비교육적 지침 걷어내야

학교 밖에서 오는 압력만 문제가 아니라 안은 안대로 노조를 만들어 수업 중에도 데모하러 나간다. 아무리 현실이 절박해도 수업보다 더 절박한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붉은 띠를 두르고 수업을 고대하는 학생을 내 몰라라 한다면 이보다 큰 교육붕괴가 있으며 이보다 큰 비도덕적 행위가 있겠는가.

어쩌다가 우리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학교붕괴.학력저하.교육이민.교육자간 갈등,마침내 선생 업신여기기 분위기며 교육자 죽이기 행태는 모두 지난 3~4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 모두 도덕을 비도덕적인 함성으로 매장하고,교육을 비교육적인 지침으로 재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정권의 교육정책만큼 실패한 정책이 없다.

역대 그 어느 정권에서 이런 실패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실패가 교육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완전히 죽여버렸다. 그 지탄, 그 질책은 이 정권이 끝난 후에도 두고두고 계속될 것이다.

송복 연세대.정치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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