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청약통장=복권"…아파트 분양시장 과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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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동시분양 1순위 청약일인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L아파트 견본주택 앞.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이 설치한 파라솔 곳곳에서 이상한 광경이 목격됐다. 당첨자 발표일까지 보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떴다방과 일반인들이 웃돈 흥정을 하고 있었다.

"당첨되면 웃돈을 최소한 5천만원은 받아줘요."(청약자)

"제게 맡기면 5천만원은 기본이고,1억원까지도 남겨 드릴게요."(떴다방)

아파트 분양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주택청약통장이 '재테크복권'으로 변질하고 있다. 당첨 후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팔기 위해 청약하는 단기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내집 마련은 뒷전이다. 여기에 주택청약통장 1순위자가 2백만명이 되는 내년 3월 이전에 통장을 쓰자는 심리가 가세하면서 분양시장은 달아오르고 있다. 동시분양사상 최고 인파인 11만1천명이 몰린 11차 분양도 실제 입주보다 중간에 분양권을 되팔아 단기 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60%를 넘을 것으로 주택업계는 추산한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주택시장을 살린다며 내놓은 ▶분양권 전매 허용▶청약자격 규제완화▶분양가 자율화 등의 부양책이 저금리를 업고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 주택청약통장은 '복권통장'=서울 강남권 일부 '큰손'과 '떴다방'은 돈을 싸들고 청약현장을 누비며 청약통장을 사들이고 있다.

서울 대치동 L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청약률이 높아 분양가가 비싸도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떴다방들은 서울 1순위 통장 사재기에 열을 올린다"고 귀띔했다.

이를 보여주듯 올 들어 청약경쟁률이 높았던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문정동 삼성래미안▶현석동 현대홈타운 등의 분양권 전매율이 50~60%에 이른다. 입주가 2년 이상 남았는데도 벌써 절반 이상이 주인이 바뀐 것이다.

◇ 내년에는 더 심해진다=건설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청약예금.부금.저축 통장 가입자는 3백55만6천명이다.

이 가운데 1순위는 90여만명. 내년 3월이면 1순위자는 2백만명으로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청약통장을 써 당첨되기가 복권당첨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 부양책 점검할 시점 왔다=분양권 전매는 법적으로 계약일 이후에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당첨자 발표일 직후에 주로 이뤄진다. 청약통장을 사고 파는 것도 위법이지만 버젓이 거래가 되고 있다. 시장을 살린다는 구실 아래 정부가 불법을 눈감고 있어 주택시장이 정상적인 거래와 가격보다 가수요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

실수요자들의 주택구입비용도 증가했다. 청약 경쟁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여건 탓에 전매를 통해 구입해야 하기 때문.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지금의 청약제도 아래서는 소비자와 떴다방을 탓할 수만도 없다"며 "분양권 전매를 포함한 주택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성종수.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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