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부의 수험생 죽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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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보다 평균 66.5점이나 떨어진 2002학년도 대학 수학능력 시험 성적 발표 이후 수험생의 혼란과 당혹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설 입시학원.기관들이 만든 총점기준 석차 추정치 등을 참고자료로 삼고 있으나 작성기관에 따라 들쭉날쭉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는 실정이다.

수능성적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는 총점을 기준으로 한 개인 석차다. 대부분 대학이 이를 신입생 선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의 '성적순 한줄 세우기'를 막는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이를 공개하지 않기로 해 수험생들이 아우성이다.

현실을 외면한 교육부의 주장은 이상에 치우친 탁상공론이라는 느낌이다. 많은 대학이 총점기준 성적으로 뽑는데도 막상 수험생에게 이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행정의 오만이다.

총점 성적순 줄 세우기가 그렇게 부작용이 크다면 왜 그동안 방치했으며 훨씬 많은 대학이 왜 교육부의 권장을 마다하고 이 방법을 선호한다는 말인가.

총점 석차의 부작용 방지와 학생의 특기.적성.잠재력 개발을 위해 총점제를 폐지한다는 취지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규제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 규제를 하려면 대학측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고 순리였다.

먼저 대학측이 총점 성적순으로 뽑지 않도록 했어야 옳았다는 뜻이다. 물에 빠진 심정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처지에 있는 수험생들의 눈과 귀부터 가리겠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혼란을 자초한 셈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올해는 수능점수 낙폭이 지나쳐 지난해 자료조차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교육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총점 기준 석차를 공개해야 한다. 수능 관련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수요자들이 필요한 부분을 활용토록 해야 한다. 교육현장을 외면한 채 핵심 입시정보를 틀어쥐고 앉아 혼란을 가중시키는 교육부의 고집은 정책의 함정에 빠진 수험생 죽이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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