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말로만 “좌석 매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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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년 8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리허설 성격으로 열린 2010 대구국제육상대회가 대회 조직위원회의 미숙한 운영으로 걱정을 남겼다. 올해 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공인 챌린지 미팅 대회로 격상됐고, 육상의 최고 스타 우사인 볼트를 초청해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대회 운영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조직위는 대회 전 “유료인 전 좌석이 매진됐다. 한국 육상 발전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흥분했지만 6만6422명을 수용하는 대구스타디움 관중석 위쪽은 텅 비어 있었다. 조직위는 ‘오후 7시40분 현재 관중 수가 4만50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마저 정확한 집계가 아니었다. 또 조직위는 “공짜 표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상당수 관중이 “관공서·학교를 중심으로 표가 많이 뿌려졌다고 한다. 나도 공짜 표를 얻어서 왔다”고 말했다.

‘엉터리 보도자료’ 해프닝도 있었다. 조직위는 대회 시작 직전 ‘볼트가 한국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뛸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냈지만 볼트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과학적인 계측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메이저 대회의 경우 단거리 출전 선수들의 출발 반응속도, 구간별 속도, 순간 최대속도 등을 알려 주는 계측 시스템을 갖추고 경기 직후에는 데이터를 언론에 제공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출발 반응속도 계측과 결승선 통과 사진 판독만 이뤄졌다. 세계 최고 스프린터 볼트와 우리 선수들의 격차를 과학적으로 비교해 볼 기회를 놓친 것이다. 손상진 조직위 미디어국장은 “장비를 수입하려면 7억원 정도가 드는데 예산상의 이유로 구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조직위 간 손발이 맞지 않아 AD카드를 찬 대회 관계자와 취재진이 경기장에서 1㎞ 이상 떨어진 통제선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오기도 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의 기록 향상도 중요하지만 대회를 품위 있게 치를 수 있는 운영 능력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하루였다.

대구=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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