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미국 대학 vs 한국 대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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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수능 부정행위 사건은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부정행위로 합격한 학생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로 인한 학우와 학교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가 겁난다.

우리 대학은 요즈음 커닝뿐 아니라 여러 모로 문제점이 많고 그것을 풀 해법도 수월치 않다. 우리의 경제역량은 세계 12위, 그러나 대학은 극심한 낙후성을 면치 못한다. 왜 그럴까? 우수한 대학이 우후죽순같이 솟아 있는 미국과 비교해 보자. 도대체 무엇이 다를까? 우선 우리의 1년 수업일수는 미국보다 한 달가량 짧다. 이는 5공 시절 데모를 막으려고 여름방학을 미국식으로 한 달 앞당기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면 겨울방학도 미국식대로 한 달 이내로 줄였어야 했으나 두세 달 그대로 남아 있다. 배움의 날은 뭉텅 줄었으나 학생들은 놀아 좋고, 교수들은 쉴 수 있어 좋고, 재단은 운영비 절감에 좋았는가 보다. 그러기에 수업일수에 대한 거론은 별로 없었다.

*** 한해 수업일수 미국이 한달 길어

미국 인문계 과목 하나의 교과서는 대개 다섯 권이다. 중심교과서 한 권에 보조교과서 네댓 권, 한 달에 책 한 권을 독파해야 C학점을 면한다. 졸업 때 우리 학생들의 지식함량은 책 100권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들의 성적은 세계 수준에서 보면 엄청 부풀려져 3분의 2 정도가 B학점을 받는다.

미국 주립대학은 교수 한 명에 학생이 7~8명꼴이고 아이비리그는 학생이 대여섯 명이다. 우리는 교육인적자원부 추천 비율인 20~25 대 1도 제대로 갖춘 학교가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 대학은 대충 가르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 대학의 주력 부대는 강사다. 교수들도 초과 강의에 시달려 대충 가르치기는 매한가지다.

미국 대학에서 강사의 수는 교수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는 강사가 과반수 강의를 맡는다. 그러나 강사 비용은 턱없이 싸서 강사는 교수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의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 미국 대학의 강사 급여는 한 과목을 가르치면 1인 최저생계비 정도 되고 두 과목이면 2인 가족이 살 만큼 된다. 그래서 비용 효율성 차원과 학교의 웰빙을 고려해 차라리 전임교수를 채용한다. 하긴 미국에도 요즈음 계약직 교수의 임용 증가 문제가 제기되고 이들에게도 전임교수의 복지 혜택을 주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동안 한국 학계에서 노동문제는 화끈한 연구 테마였다. 그러나 왠지 강사의 '노동' 문제는 외면당했다. 그 결과 한국 대학은 강사의 고혈 위에 대책 없이 확장된 허술한 공중누각이 돼버렸다.

지난 20년간 대학가에 불어닥친 민주화 바람으로 총장은 선거로 선출됐다. 선거공약 우선순위는 학교의 외적 팽창과 교수의 복지문제였다. 왜냐하면 유권자가 바로 교수였기 때문이다. 학교는 비대해졌고 안식년.연구비.의무강의시간수 축소가 정착되며 교수의 복지는 미국 수준으로 향상됐다. 학교 재정은 제로섬 게임 터여서 신임교수 확충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그 결과 교수 임용은 관권.금권.학연의 난투장이 돼 옥석을 가리지 못할 지경이 될 때가 종종 있다. 도서관과 연구실에는 책과 연구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소비자인 학생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교육의 질보다는 등록금 투쟁에만 열을 올린다. 체질화된 민주화 투쟁이 DJ 정권시절부터 방향을 전환한 탓이다.

*** 한국, 시간강사 희생 위에 세워

이런 모든 문제가 유기적으로 뒤엉켜 우리나라 대학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 기형적 구조물로 전락한 우리 대학, 처방은 전임교수 수를 대폭 늘리는 기초체력 조성으로만 가능하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므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체 개선을 한다. 그러나 우리 중견 대학은 국내의 입시 시장이 보장된 상태라 그런 노력을 안 해도 생존에 지장이 없다. 여기에 대학의 나태와 추락의 근본 요인이 있다. 그래서 대학은 스스로 자각하면서 경영해야 하는 도덕률이 요구되는 아주 힘든 업종이다.

김형인 한국외국어대 교수,미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