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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들이 본 '한국의 이상한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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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주한 외국기업들이 '법 적용때 원칙이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법.제도가 많은 데다, 어떤 때는 외국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 적용하는 잣대가 틀려=수입차 업체들은 국내의 자동차 형식승인 규정이 비현실적으로 까다로운가 하면 실제 적용할 때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적지않다는 지적이다.

수입차업체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 앞부분의 각종 표시 장치들이 핸들을 중심으로 50㎝ 이내에 있어야 한다는 형식승인 때문에 신형 자동차를 들여올 때마다 한국 규정에 맞게 새로 디자인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그러나 똑같은 차를 개인 수입 업자가 가져오면 허술하게 통과시키거나 형식승인을 면제해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최근 백혈병 치료 신약인 글리벡의 국내 약품가격 산정을 놓고 복지부가 '국제 기준에 어긋난 결정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바티스의 홍보 대행을 담당하는 에델만코리아의 이중구 이사는 "정부 고시 대로 국내 판매 약값(캅셀당 2만5천5원)을 정하는 원칙을 무시한 채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국내 거래 관행을 기준삼아 보험약가 상한액(1만7천8백62원)을 확정 발표했다"며 "이는 한국의 외교통상부도 인정한 국제적 협약에 근거한 가격산정 방법을 어긴 것으로 통상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수입원가 조사 등을 통해 적정한 가격을 산출한 것"이라며 "현재 이에 대한 노바티스의 반발은 국내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비싸게 팔기 위한 전략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통관 문제의 경우 관세청이 지난해부터 첨단 전자문서인 EDI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절차를 일부 간소화했지만 아직도 사람 손을 거치는 일이 많다고 외국기업들은 입을 모은다.

한 주한외국기업 관계자는 "행정 담당자마다 관세법을 적용하는 데 견해 차이를 보여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며 "관련 법과 규정을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보완해 누가 집행하더라도 일관성이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업체들은 국내의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시행령은 '옥외 광고물에 흑색 또는 적색의 원색 사용을 바탕의 2분의 1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빨간색 바탕에 황금색 M자 문양의 간판을 달고 있는 맥도날드는 불법 간판이어서 철거하거나 색을 바꿔야 할 판이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이미 등록된 상표에 대해 당국이 변경을 하라고 요구하거나, 규제를 한 사례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통일된 맥도날드의 브랜드 이미지를 한국에서만 바꿀 수도 없어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나이키.코카콜라 등의 세계적인 기업 간판도 적색 간판 규제에 걸려 모두 불법이다.

더구나 외국업체들은 적색에 대한 기준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차이가 있는 등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는 원색인 빨강색을 규제하는 데 반해 대구시는 적색류(원색 빨강이 20% 이상 포함)를 포함시키고 있다.

산자부 산하 옴부즈만 사무소 권순형 팀장은 "적색류의 사용을 규제하는 목적은 운전자의 시야 방해로 인한 교통사고를 예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기준에 안맞는다 호소=외국업체들은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을 제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다른 나라들은 약간의 조건을 붙인 뒤 허용하는 추세다. 예컨대 일본은 뒷좌석 승객이 없어야 하고 독일은 시속 60㎞ 이상 주행 등의 단서를 달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고속도로 통행을 불허하고 있으나 구부러진 도로가 많은 국도가 실제로는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게 외국업체의 지적이다.

어린이용 안전시트 착용 규정도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도로교통법 48조2항에 따르면 만 6세 미만의 유아에게는 안전시트를 장착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내년부터 만 14세 미만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영국업체인 브라이택스 관계자는 "어린이용 안전장구에 대한 사용의무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신장.체중 등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만 14세 미만이라고 할 지라도 키가 1백50㎝ 이상이라면 굳이 아동용 보호장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 외국기업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도=현재 근로자가 국내법인으로부터 받는 스톡옵션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이를 행사해 내는 이익이 연간 3천만원 이하면 비과세된다. 그러나 외국인투자법인(외국법인 국내지사 포함)의 근로자가 해외 모기업으로부터 받은 스톡옵션 행사 이익에 대해서는 과세를 한다.

더구나 올해부터 외국인 투자법인 근로자가 해외 모기업으로부터 받은 스톡옵션 행사이익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30%에서 10%로 인하됐다.

따라서 국내에 거주하는 다국적기업 임원들은 스톡옵션 행사 이익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근무지로 전출할 때까지 주식을 팔지 않는 추세다. 결국 한국은 세수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외국기업들은 정부기관에 각종 자료를 제출할 때마다 번역.공증을 요구받는 것도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각종 업무 문서를 영문으로 작성한다. 그런데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은 신고.인허가 신청을 하거나 조사를 받기 위해 제출하는 외국기업의 문서에 영문 자료가 첨부될 경우 번역본과 공증을 첨부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영문서류의 번역상 착오로 논란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경우에 한해 번역본을 함께 제출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외국기업 직원들은 본사에서 받는 자녀 교육비에 대해 높은 소득세를 매겨 부담이 크다는 호소도 하고 있다.

소득세법 규정에 따라 취학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근로소득공제는 초.중등 학생의 경우 연간 1인 기준 1백50만원이다.그러나 현재 외국인학교의 교육비는 학교마다 다르나 최고 연간 1천8백만원까지 한다. 따라서 외국기업 임직원의 경우 대개 취학자녀 교육비를 본사에서 보조 받고 있으나 1백50만원을 제외한 금액은 근로소득으로 인정돼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다.

외국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수차례에 걸친 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불합리한 제도와 법적용을 시정해 달라고 했다"며 "그러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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