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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 신드롬… 어른들까지 열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울 을지로 A인터넷회사 이범준(29)씨는 지난 18일 안방에서 영화 '해리포터'(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를 봤다.

미국.영국 등에서 처음 개봉된 바로 다음날의 일이다. 국내에서 번역 출판된 책을 모두 읽었다는 李씨는 외신 보도로 영화개봉 소식을 접한 뒤 궁금증을 못이겨 혹시나 하고 컴퓨터로 외국의 파일공유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네티즌들이 올려놓은 해리포터 영화 파일이 수십개 올라 있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환상 속 이야기인 영국의 아동용 소설이 각종 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사로잡으면서 각종 신드롬과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 청소년 매니어들=서울 N초등학교 6년 韓모(12.강남구 논현동)군은 요즘 친구들로부터 '미친 해리'라고 불린다.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주문 외우기 게임에서 늘 이기면서 붙은 별명이다. 韓군은 "해리포터 책에 나오는 어렵고 신기한 수백가지 주문을 외우는 내기놀이가 교실에서 유행하고 있다"며 "몇몇 중요한 주문을 모르면 왕따 당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 빠지면서 각종 주문과 도구를 실생활에 연결시키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해리포터를 읽고 인터넷의 해리포터 팬클럽 게시판에 팬터지 소설을 연재 중인 여고 2년 全모(18)양은 "소설 속 마법지팡이 같은 물건을 갖고 싶어 산에서 꺾어온 나뭇가지를 가방에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28일 현재 국내 인터넷에 개설된 해리포터 팬클럽 홈페이지는 1천2백여개. 지금까지 최다(最多)였던 인기그룹 H.O.T의 홈페이지 숫자를 넘어섰다.

수입 출판사인 문학수첩이 운영하는 홈페이지(http://www.harrypotter.co.kr)의 회원수는 42만여명. 문학수첩측은 "서버 관리에만 수억원이 나간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 신기록 행진=1999년 11월 국내에서 번역돼 지금까지 팔린 소설 해리포터는 4백여만권.

문학수첩은 "이달 들어 일주일에 5천~6천권이 나가고 있어 연말까지 5백만부 돌파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신이 나있다. 출판업계가 점치는 총 매출액은 무려 3백억원.

지난해 초 이 소설의 영어 원서(原書)를 수입해 7만부 넘게 판 교보문고측은 27일 "재고가 또 떨어져 여섯번째 수입 요청을 했다"며 "1만권 이상 판매한 기록이 없는 외국 서적부문에서 단연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영화도 지난주 예매를 시작한 뒤 개봉일부터 사흘치 표가 동났다.

◇ 우려의 목소리도=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특히 어른 사이에서도 해리포터가 인기를 끄는 것은 마법 같은 팬터지에 기대려는 현실도피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화여대 김현정(발달심리학)교수는 "이런 종류의 책은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며 "하지만 현실인식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지나치게 환상적 분위기에 빠져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민호.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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