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 서방동맹 틈… 유럽국들 참전 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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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역할 분담 문제를 놓고 마찰음을 내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실전에 투입할 지상군 파병을 원하고 있지만, 미국이 이를 만류한 채 '나홀로' 작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에서 유럽국가들의 역할이 평화유지.인도지원 등으로 축소될 경우 향후 국제 분쟁에서 미국.유럽간 연합 대응 태세에 이상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병력 대기시켜 놓고 발만 동동=영국은 전쟁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왔지만 막상 지상군 파병이 벽에 부닥치자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항에 지상군 선발대를 보낸 지 11일이 지났지만 후속 병력을 증파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당초 계획보다 2천명이 늘어난 6천명을 출동 대기시켰지만 지금은 미국의 반대로 선발대를 철수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토니 블레어 총리가 27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유엔 주재 아프가니스탄 정파간 회담 결과를 지켜보고 철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한편 프랑스는 지난주 지상군 3백명과 미라주 2000 전투기 10대를 곧 파견한다고 발표했고, 독일도 3천9백명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눈치만 보며 출동 명령을 못내리고 있다.

◇ 고조되는 불만=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6일 프랑스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지상군 참전을 막는 것은 '요리는 미국이 하고, 더러운 접시는 유럽국가들이 닦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영국 언론들도 이번 전쟁에서 영국군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며 미.영 불화설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또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은 지난주 브뤼셀에서 열린 회담에서 신속대응군 창설을 서둘러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입장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 왜 반대하나=미국은 당초 모든 우방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며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최근 전황이 미국 쪽으로 기울면서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등 공동 군사작전을 펼칠 여지가 많지만 영국.프랑스 지상군이 들어와 예상외의 전과를 올릴 경우 탈레반 이후의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이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참전을 꺼린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미국은 탈레반을 완전 축출한 뒤 평화유지군 활동이나 인도적 지원 임무를 유럽국가들에 맡길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잔당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 미군 대신 유럽 군인들에게 뒤처리를 맡김으로써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계산이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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