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카불까지] 운좋게 헬기 타고 운산 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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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치 모든 생명체의 발길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헬기에서 내려다본 아프가니스탄 북부 힌두쿠시 산맥의 눈덮인 고봉(高峰)들은 거칠고 날카로웠다.

기자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지난 23일 러시아제 헬기를 타고 힌두쿠시 산맥의 기암괴석 위를 날아 카불에서 북쪽으로 1백50㎞ 떨어진 아스타나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두시간여. 동승했던 미국.독일.일본 기자들과 자동차를 빌려 타고 천길 낭떠러지의 판지실 계곡길을 따라 네 시간을 더 달려 24일 카불에 들어섰다. 흥분과 불안이 교차하는 거친 여정이었다.

이동 거리로만 따지면 비행기로 불과 여섯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서울에서 카불까지 오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이동 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19일 두샨베에 도착하자마자 카불로 가는 방법부터 수소문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봤지만 국경 개방이 간헐적으로 이뤄지는데다 카불까지 꼬박 4박5일이 걸린다는 점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타지키스탄 정부가 항로를 재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루 한번 운항하는 헬기가 실어나를 수 있는 인원이 11명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기상 사정 등 여러가지 이유로 매일 뜨지도 않았다. 예약번호는 93번. 매일 헬기가 뜬다 해도 열흘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육로로 국경을 넘기로 마음 먹고 있던 22일 밤 갑자기 타지키스탄 외무부에서 연락이 왔다.23일 출발하는 헬기에 한 자리가 비었다는 전갈이었다.서둘러 티켓을 끊었다. 왕복 요금으로 2천3백달러를 냈다.

수화물이 50㎏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물 10ℓ와 응급시 사용할 소독용 보드카 1ℓ, 버너 연료 2ℓ, 휴대용 정수기와 전투식량을 챙겼다.낡은 헬기와 곧 멈춰버릴 것 같은 트럭에 번갈아 몸과 짐을 싣고 24일 오후 드디어 카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불=이상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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