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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평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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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뉴욕시에 한때 '미아 패로의 법(Mia Farrow Law)'이란 게 있었다. 인기 영화배우 미아 패로가 임대료 규제로 인해 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관련 법률에 붙은 별명이다. 1990년대에 센트럴파크 서쪽의 방이 10개나 되는 호화 아파트에 살고 있던 미아 패로는 방이 하나뿐인 아파트와 비슷한 임대료만 내고 있었다고 한다. 임대료 규제법(미아 패로의 법) 때문에 주인이 임대료를 올리지도, 내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취지는 저소득층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입주만 하면 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고, 미아 패로도 이를 즐긴 사람 중 하나였다.

미아 패로의 법은 저소득층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임대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 보니 임대 아파트는 갈수록 줄었고, 일반 서민이 아파트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공급이 줄어 어느 순간부터는 임대료가 훨씬 비싸졌다. 미아 패로의 법은 뉴욕 일부 지역을 슬럼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들었다. "폭격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시키는 것이 바로 임대료 규제"라고 혹평한 경제학자도 있었다.

엊그제 초등학생 딸이 다니는 영어학원에서 원장이 보낸 편지가 왔다. 12월 1일부터 학원비를 약 20% 내리겠다는 내용이다. 학원 수강생이 줄어서가 아니라 교육 당국이 학원비를 낮추도록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경기 불황에 따른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의 일환으로 교육 당국이 서울 강남지역 모든 학원의 학원비를 하향 조정하도록 권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부가 민생을 명분으로 강남지역 학원비 낮추기에 나섰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학부모 입장에서야 교육의 질이 보장되면서 학원비만 내린다면 그보다 반가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기대는 편지를 계속 읽으면서 무산됐다. 편지는 학원비 인하와 함께 강사 수를 줄이고 한 반의 정원을 늘릴 수밖에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과 교육 시장은 재화의 한정성, 공공성 때문에 규제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미아 패로의 법은 섣부른 규제가 오히려 부작용만 낳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학교 평준화에 이어 학원비 규제로 학원 평준화까지 이뤄질 때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