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 기후변화협약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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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달 초 세계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두 가지 국제회의가 거의 동시에 열렸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회의와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세계경제에 당장 영향을 미칠 WTO 협상은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반면 2008~2012년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평균 5.2% 줄이기로 했던 교토의정서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에 합의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우리에게 '강건너 불'이 아니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논의가 일단락되면서 개도국의 감축문제가 본격 논의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교토의정서 이행을 거부해온 미국이 참여할 경우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1999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4억1천만t(이산화탄소 기준)으로 세계 10위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도 상당수 선진국보다 많으므로 온실가스 감축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는 에너지 사용량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에너지는 소비생활에도 필요하지만 산업의 동력으로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산업생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선진국보다 5~10년 늦게 감축을 시작하더라도 2010~2020년에는 30~50%를 감축해야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 경우 국내총생산이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정부는 '기후변화협약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분야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종합실천계획을 마련하고 있지만 우선 국내 에너지.산업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정책은 안정공급 위주에서 벗어나 에너지산업의 민영화와 함께 정부의 간섭을 줄여 시장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합리적인 세제개편을 통해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국내 산업구조도 이에 맞춰서 개편돼야 한다. 과거 성장의 견인차였던 철강.석유화학산업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며 국제적인 환경규제에 취약하다. 단기간에 산업구조 조정은 어렵겠지만 정부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민간기업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협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에너지.온실가스 저감기술, 대체에너지 개발 등을 위한 종합적인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마련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

강승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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