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급등 배경·전망] 외국인 끌고 기관은 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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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증시가 대세 상승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오를만큼 올랐다고 보는 개인들이 23일 대량 매도에 나섰지만 외국인과 기관투자가가 쌍끌이 매수로 맞서면서 종합주가지수는 연중 최고치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번 장세의 특징은 '외국인 독주,대형 우량주 편식'으로 압축된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괜찮게 나오자 기관들도 "더 이상 나빠질 것은 없다"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잠시 쉬어가는 조정이 예상되지만 경기 회복세를 살펴가며 저점을 높여가는 전형적인 강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 '바이코리아'=외국인들은 거래소시장에서 지난달 1조3천9백억원, 이달 들어 1조3천3백억원 어치의 주식을 순수히 사들였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외국인 비중은 사상 최고 수준인 32%까지 높아졌다.

올들어 미국이 열차례 금리를 내리자 채권에서 주식쪽으로 방향을 튼 외국인들은 한국경제의 상대적인 장점에 주목하고 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경쟁국과 달리 한국은 플러스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또 적정 주가를 가늠하는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의 경우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 국내 상장기업은 미국의 우량주인 S&P500지수 포함, 기업(평균 27배)의 절반 수준인 10~11배에 머물고 있다.

서울 증시가 첨단.수출관련주와 내수관련주의 비율이 4대6으로 균형을 이룬 점도 외국인의 눈에는 매력적이다. 부동산과 금융 비중이 압도적인 홍콩이나 반도체.컴퓨터의 의존도가 높은 대만증시보다 투자전략을 다양하게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순매수에는 원화가치 강세도 한몫하고 있다. 한화증권 임일성 연구원은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외국인은 주식 평가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며 "최근에는 외국인 순매수로 환율이 떨어지자 다시 환차익을 노리고 외국인 매수세가 들어오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유동성 장세+경기 회복 기대감=최근엔 국내 돈까지 가세해 지수상승에 탄력이 붙고 있다. 고객예탁금은 연중 최고치를 돌파했고, 간접 투자자금인 주식형 펀드는 이달 들어 2천6백17억원 늘어났다.

증시를 옥죄던 경기 불안감은 청신호가 꼬리를 물면서 많이 누그러졌다.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와 소매판매.실업수당 청구건수 등 경기관련 지표가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고, 1% 안팎으로 예상한 국내 3분기 실질경제(GDP)성장률은 1.8%로 집계됐다.

LG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의 금리인하와 테러사태 이후의 재정확대 정책으로 전세계적으로 달러가 풍부해지고 있다"며 "국내에도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에 투자했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 명암과 파장=주가상승은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우선 기업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질좋은 장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 개선→투자 증대→실업 감소 등의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개인들은 자산효과(주가 평가이익→소비증가)를 누리고,정부도 공적자금 부담을 덜 수 있다.

재경부는 "종합지수가 900선까지 오르면 정부보유 은행주를 매각해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후유증도 나타나고 있다. 원화환율이 떨어지고 채권 수익률(금리)은 올라 기업들이 수출경쟁력 약화와 금융비용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또 돌발 악재로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증시는 물론 경제 전반에 큰 충격파를 미칠 수 있다. 지금은 외국인의 한국탈출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외환위기 때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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