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와이드] 대관령 '쾌속도로'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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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피서철 뙤약볕 아래서 5~6시간이나 차 안에 갇혀 있으면서 "다시는 이 길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결국 다시 와야만 했던 길.

겨울엔 폭설을 만나 하루종일 옴짝달싹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긴급 공수된 빵과 음료수로 허기를 달랬던 고행(苦行)들.

흔히 아흔아홉 굽이 길로 불리던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을 넘나들었던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애환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득한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됐다. 오는 28일 대관령 구간에 왕복 5차로의 새로운 길이 뚫려 구절양장인 기존 도로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개통을 앞두고 미리 달려본 길이 21.9㎞의 새 길은 전혀 딴 세상의 도로같았다.

대관령 정상에서 남쪽으로 2.5㎞쯤 떨어진 능경봉에 굴을 뚫어 만든 대관령 1터널에 들어서 완만한 커브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기울기가 5% 이하의 내리막길인 데다 곡선반경이 8백m 이상으로 거의 직선화돼 대관령을 넘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기존 도로는 기울기가 평균 9%이고 곡선반경은 30m에 불과하다.

땅에서 높이 80~90m에 설치된 성산 1.2교를 지날 때는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15분쯤 달리자 차는 어느덧 종점인 강릉 IC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소 45분 정도 걸리던 이 구간의 운행 시간이 3분의1로 단축된 것이다. 관광 성수기에도 차량 흐름은 시원스럽게 이어질 것 같았다.

한국도로공사 영동건설사업소 윤문호(48)공사부장은 "앞으로 대관령에서 교통 두절이나 체증이 발생했다는 뉴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대관령 고개를 오르내리며 진땀을 흘리던 고행이 사라지는 대신 동해바다의 절경을 내려다보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돼 아쉬웠다. 지난 1월 7일 폭설로 부인.자녀 등과 함께 대관령에서 26시간 갇혀 있었던 조철희(38.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씨는 "고속버스에서 배고프다며 보채는 아이들과 함께 겪은 당시의 고생이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사는 해발 8백65m의 험한 산등성이를 따라 진행된 만큼 국내 고속도로 역사상 최대의 난공사였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11.22㎞ 구간이 교량(33곳)과 터널(7곳)로 돼 있다. 다른 고속도로의 경우 3년 정도면 가능할 것을 꼬박 5년이 걸렸다. 공사비도 ㎞당 평균 2백여억원의 1.5배가 넘는 3백50억원씩 투입됐다.

전 구간에 가로등(8백13개)을 설치한 곳도 여기가 처음이다.기후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절벽이 많은 지형을 고려해 교량의 가드레일과 중앙분리대의 높이를 당초 90㎝에서 1.27m로 높였다.

하지만 하행선은 20여㎞에 이르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그만큼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겨울철 노면이 얼어붙거나 안개가 낄 경우 연쇄 추돌사고가 일어날 수 있고, 과속으로 인한 대형사고 우려도 높다. 한편 기존 도로는 지방도로로 전환돼 관광도로의 역할을 맡게 된다.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빠져나와 횡계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대관령=홍창업 기자

***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인 대관령은 한랭하고 비가 많으며, 남한에서 서리가 제일 먼저 내리고 눈이 가장 잦은 지역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약 나흘간 해를 볼 수 없는 노정'이라고 표현했으며 김시습도 '조도(鳥道.나는 새도 넘기 어려울 만큼 험한 산속의 좁은 길)'라고 칭했다. 1800년대 이병화라는 인물이 한겨울에 고갯길을 넘다가 얼어 죽는 것을 막고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길목에 주막을 설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포장 국도에서 1975년 왕복 2차선 고속도로로 개통되면서 서울~강릉간이 승용차로 9시간에서 4시간으로 단축됐고 이번에는 2시간30분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번 확장 개통으로 연간 8백17억원의 물류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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