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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간송과 ‘하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6호 02면

영화 ‘하녀’를 보러 갔습니다. 주연을 맡은 전도연에게 과연 다시 한번 칸의 영광을 안길 것인지 하는 기대도 함께 품고요. 고(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동명 작품을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연은 미술이었습니다. 영화 속 배경인 700평짜리 2층 대저택 곳곳엔 기하학적 추상 회화로 가득했습니다. 피아노로 베토벤을 즐기고 저녁이면 와인을 음미하는 최상류층 젊은 가장에게 미술은 그의 교양지수를 드러낼 또 다른 바로메타였겠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꼬맹이 딸의 생일 선물로 그림 하나를 건넵니다. 글씨 작품 ‘LOVE’로 유명한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의 세리그래프(실크스크린 인쇄에 의한 채색화) ‘메릴린’이었습니다. 원안에는 메릴린 먼로의 상반신 누드가 있고 그 주위를 매, 클래라, 베티, 제인, 리타’라는 글씨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바로 매 웨스트, 클래라 킴벌 영, 베티 데이비스, 제인 맨스필드, 리타 헤이워스의 이름으로 모두 당대의 섹스 심벌들이죠.

부자 아빠는 왜 어린 딸에게 하필 이 그림을 선물로 주었을까요. 아니, 임 감독은 왜 시가 50억원이나 된다는 이 그림을 직접 빌려 작품에 사용해야 했을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문득 간송 전형필(1906~62사진)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조선에서 손꼽히는 갑부 자리에 올랐을 때가 스물네 살 때였습니다. 논만 보더라도 지금 돈으로 6000억원에 달하는 규모였죠.

그는 갑작스레 얻게 된 유산을 당시 마구 일본으로 유출되던 우리 문화재를 사 모으는 데 오롯이 바칩니다. 최근 출간된 『간송 전형필(김영사)』을 읽으면서 새삼 그의 정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간송은 왜 다른 부자와 달랐을까요. 그의 ‘안목과 열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마침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16일부터 30일까지 봄 전시를 연다는 소식입니다. 영화 속 젊은 부자 부부의 모습에 속이 편치 않으셨다면,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간송의 삶을 생각하며 나들이 길에 나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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