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악재, 재정보다 경기가 더 걱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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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호 26면

2008년 9월부터 6개월 동안 미국 정부가 AIG에 쏟아 부은 돈은 1800억 달러다. 이번에 그리스를 구제하기 위해 투입하기로 한 자금이 모두 합쳐 1500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AIG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입했는지 알 수 있다. 왜 리먼을 손쉽게 버렸던 미국 정부가 AIG는 필사적으로 살린 것일까?

이종우의 Market Watch

위기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위기를 겪고 나면 사람들에게 잠재적인 공포 심리가 생겨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위기가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증후군을 겪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외환 사정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다. 그리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2년 전에 금융위기를 겪은 만큼 위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

위기증후군은 새로운 위기를 막는 데 유용하다. 대부분의 위기는 사태의 발생과 정책의 나태함이 맞물려 발생하는데 유럽 재정 문제는 위기에 대한 인식 때문에 정책의 나태함이 작용할 가능성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유럽 재정 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질 위험은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경제다. 정책이 재정 불안에 따른 파국적인 결과를 막았어도 경기 둔화까지 벗어난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 경제는 3개로 나뉘어 있다. 먼저 아시아가 중심이 된 이머징 마켓의 경우 V형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미국으로, U자 형태의 완만하지만 안정적인 경기 흐름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은 유럽과 일본으로, 경기 회복이 더딜 뿐 아니라 재정 위기의 한복판에 위치해 경기가 다시 나빠지는 더블 딥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경기가 둔화할 경우 세계 경제의 30%에 해당하는 지역이 영향을 받게 된다. 작년은 전 세계 모든 지역의 경기가 회복됐고 그 속도도 빨라 주식시장 입장에서 상당히 좋은 형태였다. 재정 위기를 계기로 이 그림이 약해질 경우 주식시장 모멘텀은 작년에 비해 현저히 둔화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러 나라에서 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사태가 진정된 상황에서 경제정책 공조에 연연하기보다 국내의 불안 요인을 먼저 제거하자는 심리 때문인데 만일 정책금리 인상이 이루어진다면 V형태의 경기 회복을 완성한 이머징 마켓, 특히 중국이 먼저일 것이다.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주가 하락이 단순히 재정 위기에 대한 공포에서 온 것이라면 주가는 빠르게 원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반면 재정 위기를 계기로 경기 둔화가 나타난다면 고점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좀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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